['통일기업' 모델 폴크스바겐 작센 공장을 찾아]

중앙일보

입력

한반도에서 남북간 경제협력이 활발하게 모색되고 있는 가운데 독일 통일 10년간의 변화, 특히 경제적 측면에서의 변화상을 살피기 위해 작센주 츠비카우 인근 모젤에 있는 폴크스바겐(VW)자동차 작센공장을 찾았다.

이곳은 독일 통일후 VW이 서쪽 민간기업 가운데 최초.최대 규모로 동독 지역에 투자해 세운 기업이다.

츠비카우는 독일 자동차 산업의 역사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도시다.

아우구스트 호르흐가 1904년 최초로 이곳에 자동차 공장을 세운 뒤 1909년 아우디사를 창립했다.

2차대전 후에는 동독 경제의 상징이었던 트라반트를 생산하던 국영 자동차공업동맹(IFA)산하 작센링 자동차제작소가 있었다. 바로 이곳에 아우디의 모회사인 VW이 다시 공장을 세운 것이다.

91년 봄 공장 건설이 한창이었던 이곳을 둘러봤던 기자로서는 그간의 변화가 몹시 궁금했다.

그러나 이 회사는 한참 애를 먹인 뒤에야 취재를 허락했다. 한국이 이제 세계 5~6위의 자동차 생산대국이 됐기 때문에 한국기자를 경계하는 것일까. 그러고 보니 베를린에서 남쪽으로 3백㎞ 떨어진 츠비카우로 가는 아우토반 곳곳에서 한국차들과 만났다. 한국차들은 중.소형차가 중심인 VW 차들과 경쟁관계에 있다.

"이곳은 동.서독이 하나가 돼 함께 성장하고 있는 현장입니다."

55만여평의 대지에 웅장하게 들어선 공장으로 기자를 안내한 군터 잔트만(41)홍보실장은 이렇게 입을 연 뒤 그간의 변화과정을 설명해 나갔다.

베를린 장벽 붕괴 직후 VW은 동독 IFA와 50%씩 출자해 트라반트를 대체할 자동차 조립공장을 설립했다.

실제로 90년 5월부터 서쪽에서 만들어진 부품들을 이곳으로 운반, 소형 폴로 승용차를 조립 생산했다.

그러나 통일로 상황이 급변하자 VW사는 90년12월 이 회사를 1백% 자회사로 바꾸면서 단순 조립공장이 아니라 인근 켐니츠의 엔진공장과 묶어 완성차 생산공장으로 바꿨다.

지금까지 투자한 금액은 35억마르크(약 1조8천억원). 현재 6천5백여명의 직원들이 이 공장과 켐니츠의 엔진공장에 근무하고 있다.

91년 연간 5만대를 조립하던 시설은 그간 증설을 거듭, 현재 연간 26만8천대(99년)규모로 늘어났다.

94년 25만대, 97년 50만대 에 이어 지난해 7월 1백만대 생산을 돌파했다. 매출액도 96년 22억마르크에서 99년에는 69억마르크로 급증했다.

"직원 6천명 중 서쪽 사람은 간부급 15명 뿐입니다. 나머지 대부분은 저처럼 옛날 작센링공장에서 일하던 사람들입니다. 부품회사, 서비스센터, 판매회사 등을 합쳐 약 3만6천명이 일자리를 찾았는데 츠비카우 주민이 10만명인 점을 감안하면 대단한 고용효과지요."

동.서독 직원간 갈등은 없었느냐는 질문에 잔트만 실장은 "없었다" 고 단언하고, 서로의 장점 만을 취해 발전해가자는 취지의 '동반관계 속의 생산' 이 회사의 슬로건이라고 강조했다.

현재 동쪽 노동자의 평균임금은 서쪽의 90%가 채 안되지만 이 회사는 96년 이미 1백%를 달성했다.

VW 작센공장의 10년사는 이처럼 서쪽 자본과 동쪽 노동력을 결합해 성공을 거둔 케이스다.

그러나 수치상의 성공이 모든 것을 해결하진 못했다. 시가지의 우중충한 건물들 사이로 낡은 트라반트가 많이 눈에 띄었고, 사람들의 표정도 과거에 비해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통일 전에는 한때 2만명이 근무하기도 했지만 이제는 몇천명이 고작이다. 이곳 실업률이 20%는 넘을테니 나는 그래도 행운아라 할 수 있지만 우리가 원했던 통일은 이런 게 아니었다. 2급국민으로 밀려났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정문 경비원으로 일하는 쿠르트 페르톨트의 탄식에 회사 간부들은 곤혹스런 표정을 지었다.

베를린〓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