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12만 명 ‘반푸틴’ 시위 그래도 푸틴이 웃는 까닭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14면

4일 러시아 대선을 한 달 앞두고 모스크바에서 열린 대규모 반정부 시위에 참가한 한 시민이 ‘유죄’라는 제목을 단 죄수복의 푸틴 인형을 들고 행진하고 있다. 이날 모스크바에서는 반정부와 친정부 시위가 동시에 열렸다. [모스크바 AFP=연합뉴스]

러시아 대통령 선거를 한 달 앞둔 4일(현지시간) 모스크바의 기온은 섭씨 영하 20도 이하로 떨어졌다. 유례없는 혹한이었지만 반(反) 푸틴과 친(親)푸틴으로 나뉜 러시아인들의 시위 열기는 뜨거웠다.

 이날 정오 모스크바 중심가 남쪽 칼루슈스카야 광장에 모여든 반푸틴 시위대는 약 3㎞ 떨어진 크렘린궁 인근의 ‘늪 광장’으로 행진을 시작했다. 늪 광장은 지난달 대규모 부정선거 규탄 시위가 벌어진 곳이다. “공정한 선거를 원한다”는 플래카드를 앞세운 시위에는 모두 12만 명이 참가했다고 주최 측은 발표했다. 경찰 측은 모두 3만6000명에 달했다고 밝혔다. 어느 쪽 주장이 맞든 소련 붕괴 후 발생한 반정부 시위로는 최대 규모다. 이들은 지난해 12월 총선 결과 무효와 대선 3선에 도전하고 있는 블라디미르 푸틴(59) 총리의 사퇴를 촉구했다. 이번 반푸틴 시위의 주체는 ‘중간층’이라 불린다. 이들은 1998년 당시 인구의 5~10% 정도였으나 현재 전체 모스크바 인구의 20~30%를 차지한다. 월평균 4만~5만 루블(약 150만~180만원)의 소득계층이다. 시위대의 70% 이상이 대졸 이상 학력을 가진 고학력 계층이란 점이 특징이다. 그러나 이날 모스크바의 반대편에서는 친푸틴 집회가 열렸다. 모스크바 승전공원에는 13만8000명(경찰 발표)이 모여들었다. “푸틴 지지” “러시아에서 정권 교체 혁명을 허용하지 않는다”는 슬로건을 외친 이들의 요구는 ‘안정’이었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이날 친푸틴 집회에 교사와 노동자들이 대거 동원됐다는 소문이 제기됐다.

 이런 양상 속에서도 푸틴 지지율은 올 들어 회복세를 보이고 있다. 러시아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따르면 1월 25일까지 푸틴 총리와 겐나디 주가노프 공산당 위원장, 블라디미르 지리놉스키 자유민주당 당수, 미하일 프로호로프 ‘오넥신’ 창업자, 세르게이 미로노프 전 상원의장 등 5명이 대선 후보자 등록을 마쳤다. 지난해 말 총선 부정선거 의혹으로 반정부 시위가 계속되면서 30%대까지 떨어졌던 푸틴 지지율은 3일 러시아 레바다 센터의 여론조사 결과 52%를 기록했다.

 야당 후보인 공산당의 주가노프와 자유민주당의 지리놉스키는 각각 8%에 그쳤다. 나머지 두 후보도 4%의 저조한 지지율을 기록했다. 본격적인 선거전이 시작되면서 푸틴은 정권 시절 누렸던 정치·경제 안정을 전면에 내세웠고, 지방과 보수층을 결집시켰다. 현직 총리의 이점을 이용한 ‘퍼주기식 공약’도 남발하고 있다. 국영TV를 이용한 선전활동도 적극적이다. 부정선거 의혹을 없애기 위해 “모든 투표소에 CCTV를 설치하겠다”는 약속도 했다.

 그러나 푸틴의 대선 승리를 점치는 가장 큰 이유는 푸틴에 대항할 만한 유력 후보가 없다는 것이다. 최대 야당인 공산당의 주가노프 지지층은 급진 좌파와 보수파 일부이며, 자유민주당의 지리놉스키도 일부 민족주의 세력이 따를 뿐이다. 야당 후보들은 당별로 표를 분산해 푸틴의 과반 득표를 막고, 어떻게든 3주 후의 결선투표를 치른다는 복안이다.

박소영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