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찹쌀로 韓菓 만들면 부가가치 3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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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사의 기본은 논농사와 밭농사이다.

이들 농사는 늘 하늘을 쳐다봐야 되고 하늘의 도움 없이는 성공적인 농사가 힘든 형편이다. 여기에 가격등락폭도 심하다. 채소의 경우는 심하면 1백 배의 가격 차이를 보이기도 한다.

그런 쌀농사를 지혜롭게 극복하고 있는 농사꾼이 있다.

그는 1차 농산물을 이용하여 한과를 생산해 내고 있는 농사꾼. 벌써 20년째다. 지난해에는 중소기업청으로부터 벤처기업으로 지정받기도 했는데, 한과의 약점인 짧은 보존기간을 대폭 늘리는 기능을 개발해 낸 게 그 이유다.

“우리 과자가 초콜릿하고 맞먹으려면 미국과 일본에 수출할 수 있도록 유통기한이 길어야 할 것 아닙니까? 그런 신기술을 개발했습니다. 덕분에 매출도 두 배로 늘었죠.”

김규흔씨(신궁한과 대표·031-533-8020). 한과를 만들어 전통도 지키고 대중화에도 앞장서고 있다.

요즘은 세계시장을 겨냥, 우리 한과의 세계화에도 온 정성을 쏟고 있다. 그는 영덕에서 태어난 경상도 사나이다. 3백여평 정도 되는 한과 생산공장 안에는 70여명의 아주머니들이 쉴새없이 한과를 만들고 있었다.

다른 쪽에선 조심스레 찹쌀가루를 반죽하고 한쪽에선 연신 기름에 튀겨내고…. 공장 한곁엔 빽빽히 적힌 추석 주문생산 일람표가 붙어 있었다.

더구나 서울에서 열리는 아셈회의(아시아 - 유럽 정상회담)에 출품할 50만원짜리 최고급 한과세트를 빚기 위해 20일째 철야작업을 해 왔다. 해외 수출길을 확실히 다지기 위해서다.

‘혼을 쏟아 붓는다’ ‘손으로 예술품을 만든다.’ 한과의 장인정신을 강조하는 김규흔씨와 직원들로 인해 공장 안엔 긴장감마저 감돌았다.

이곳의 한 해 한과 매출은 23억원. 올해 수출목표는 30만 달러이다. 놀라운 것은 액수뿐만 아니라 실속이다.

찹쌀이 한과로 변했을 때 그 부가가치는 몇 배로 솟구친다. “쉽게 말해 36만원어치 찹쌀 한 가마면, 한과 1백20만원어치는 충분히 만들죠.”

한과는 주로 찹쌀과 멥쌀로 만든다.

찹쌀가루는 속을 만들고, 멥쌀은 겉치장을 한다. 그중 찹쌀이 대략 70%를 차지한다.

그래서 김씨는 한 해 찹쌀만 80kg짜리 6백 가마(48t), 멥쌀은 5백 가마(40t)를 쓴다. 이 정도 쌀로 만드는 한과의 양은 8백t. 결국 쌀88t(찹쌀 48t+멥쌀 40t)이 한과 8백t으로 만들어지는 셈이다. 찹쌀 한 가마면 약 9가마 분량의 한과를 만들어 낼 수 있다는 계산이다.

김씨는 유기농 찹쌀만을 고집한다. 철원 농민들과의 계약재배를 통해 들어오는 유기농 찹쌀의 원가는 80kg당 36만원. 농민들에게 제값을 톡톡히 쳐 준다.

한과를 만드는데 들어가는 인력도 만만치 않다(평상시 50명, 명절 때 70명). 하지만 이런 재료비와 인건비를 제하더라도 평균 3배 정도의 부가가치가 한과생산을 통해 보장되고 있다.

더구나 여기에 인삼이나 키토산, 녹차 같은 건강식품을 첨가하면 기능성 한과가 된다. 그러면 일반 한과에 비해 20% 정도 더 높은 수익을 얻을 수 있다. 해외 수출길도 보다 쉽게 열게 된다. 우리 농산물의 잠재력을 십분 활용한 셈이다.

이런 점 때문에 농촌에선 한과가 ‘효자 소득원’이다. 구기자로 유명한 충남 청양의 농민들은 추석을 앞두고 자신이 가꾼 찹쌀 및 구기자와 갖은 곡물로 ‘구기자 한과’를 만드는데, 없어서 못팔 정도로 예약이 빗발친다. 가을 한 철만 일해도 농사짓는 것 몇 배 수입이라며 흐뭇해한다.

멋들어진 포장에 담긴 한과 선물세트만 해도 10만원 이상 30만원대까지 고가품이 적지 않다.

그런데 유통기한이 너무 짧아 연중 생산, 공급이 안된다는 것. 때문에 아무리 맛이 좋고 돈이 돼도 명절 성수기에 반짝하고는 더 이상 생산할 수 없었던 것이다.

“전에는 여름에 한과를 만들어 팔 엄두를 못냈어요. 금방 상하니까 한 달도 못가 반품이 쏟아졌죠. 그래서 어떻게든 저장성을 높이려는 연구에 들어갔습니다.” 김씨가 23억원의 매출을 올리게 된 것도, 벤처기업으로 지정된 것도 바로 이 대목이다.

그는 쌀의 미강에서 추출해낸 감마 오리자놀이란 천연 황산화물질을 한과에 첨가한 후, 한과의 저장성을 두 배 이상 늘릴 수 있는 기술을 5년간의 연구 끝에 개발했다.

한국 식품개발연구원과 공동으로 개발한 이 기술은 현재 특허출원중에 있다. 3~4개월이던 한과의 유통기한을 6개월~1년까지 늘린 것이다. 유통단계가 복잡한 일반 도매시장에도 한과를 내보내며 전국적으로 대리점 체계도 구축했다.

판로가 넓어진 만큼 매출은 당연히 올라갔다. 기술개발이 되기 전인 1998년 12억5천만원에 불과하던 매출이 1년 사이에 23억원으로 늘어난 것이다. 올해는 여기서 30% 이상 더 신장할 것으로 보고 있다.

들쭉날쭉하던 한과의 맛을 철저히 관리한다는 것도 특징이다. “작년에 일부 소규모 업체들이 만든 한과에서 타르색소나 방부제가 검출돼 전체 한과업계가 큰 타격을 입었습니다.

이래선 도저히 안되겠다 싶어 우선 저희부터 품질관리를 바꿨죠.” 한과는 반죽부터 튀김까지 거의 모든 작업이 사람 손으로 이뤄진다.

따라서 똑같은 원료를 갖고도 손맛에 따라 맛이 바뀌고, 복잡한 제조과정을 거치다 보면 어느새 예상치 못한 품질이 나올 수 있다.

그래서 김씨는 물엿은 몇g, 반죽은 어느 정도 강도로 몇 분, 기름 온도는 몇℃ 같은 한과생산 매뉴얼을 만들었다.

때문에 한과를 만드는 사람이 수시로 바뀌더라도 한과의 품질은 일정한 규격대로 유지된다. 산가, 과산화물가, 모양, 당도, 색깔, 물엿 함량 같은 한과와 관련된 품질규격은 30분 단위로 점검하고 있다.

김씨의 공장에서는 30분 단위로 기름양을 체크해 기준치 이상으로 기름이 들어가면 바로 기름을 빼내고 남는 기름으로 재활용 비누를 만들어 명절 때 매장에서 한과와 함께 재활용비누를 나눠 주며 한과의 안전성도 함께 홍보하고 있다.

한과벤처. 그는 항상 소비자들의 입맛에 맞춰 새로운 한과를 개발하고 있다. “일본 빵박람회를 가봤는데 맛이나 포장이나 정말 안사고는 못배길 정도로 잘 만들었어요. 거기서 한 가지를 배웠죠.

한 가지 맛만 고집할 게 아니라는 것을.” 요즘 아이들 입맛을 겨냥한 ‘초콜릿 유과’, 기능성 한과로 개발한 ‘키토산 유과’ ‘인삼 유과’ ‘녹차 유과’다.

현재 그가 생산하고 있는 한과 종류만 80~90가지에 이른다. 가격대도 3천원대의 봉지유과부터 50만원대 기능성 한과 선물세트까지 천차만별이다. “한과의 미래는 아이들이 쥐고 있습니다.

그래서 마케팅 차원에서 초등학교 급식도 보내고 초등학교 선생님들도 초빙하고 있습니다.” 20일간 철야작업으로 완성된 그의 최고급 한과세트는 8월30일 서울에서 열린 한국전통식품 품평회에서 대상을 수상했다.

한과의 명인이 되겠다는 그의 꿈이 서서히 결실을 맺어가고 있는 것. 토종한과와 벤처, 장인정신과 경영마인드의 결합이 서서히 이뤄지고 있었다. 문의 02-781-8264.

신동헌 KBS제작단 제작부장·農業전문
자료제공: 이코노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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