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틴틴경제] 물가 오르면 저축 안하려고 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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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부쩍 물가가 불안하다는 얘기를 많이 하네요. 실제로 지난 3개월 동안 소비자 물가는 1.6%, 8월 물가는 지난해말보다 2%나 올랐거든요. 참 오랜만에 나오는 걱정 같아요. 왜냐면 한동안 우리나라는 물가 오름세(인플레이션)없이 건실한 경제성장을 계속한 셈이거든요.

우리가 경제개발 정책을 가속화하던 시절의(흔히 개발연대라는 용어를 사용함)물가는 엉망이었어요. 1년에 20~30%의 물가상승률을 기록하는 것도 예사였습니다.

그러다가 1980년대 들어 물가를 잡는데 역점을 두기 시작했지요. 소위 성장보다는 안정이라는 기치를 올린 것이죠.

세계사적으로 볼 때 인플레이션 개념이 본격 등장한 것은 16세기 유럽에서였습니다.

콜럼버스의 신대륙 발견 이후 금광.은광이 발견되고 그 생산이 크게 늘어나면서 물가상승이 지속됐어요. 가장 유명한 예는 제1차 세계대전 이후의 독일의 경우랍니다.

1923년 무렵 독일의 물가는 하늘 높은 줄 모르고 뛰어올라 한 때 1조마르크가 1마르크 신세로 추락하기도 했대요. 저축을 했던 형보다 맥주를 사 마시고 병과 뚜껑을 모았던 동생이 더 부자가 됐다는 일화가 결코 과장이 아닙니다.

◇ 왜 물가를 잡아야 하나〓인플레이션은 물가(물건 값)가 오른다는 의미입니다.

달리 말하면 화폐가치(돈 값)가 떨어지는 것이죠. 결국 화폐(돈)보다는 재화(물건)을 갖고 있는 사람이 유리하게 됩니다. 극단적으로는 아예 예금보다 소비를 하는 편이 나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면 문제는 심각해집니다. 우선은 저축을 기피하게 때문에 투자를 할 재원이 줄어듭니다.

국가 경제에 비상이 걸릴 수 밖에 없지요. 그 돈을 외국에서 들여와야 하니까요. 게다가 물건 또는 땅.건물을 가진 사람은 자꾸 재산을 부풀려가게 됩니다. 가만히 있어도 돈 값이 떨어지니 부동산 값은 오를 것 아닙니까.

반대로 소시민들의 상황은 더 어려워집니다. 우선은 같은 수입으로 구입할 수 있는 물건은 적
어지기 때문이죠. 특히 내 집을 마련하기는 더 요원해진답니다.

아무리 절약해 돈을 모아도 집을 살 즈음 그 값은 더 올라버리니 그럴 수 밖에요.

사실 약간의 물가상승은 경제에 도움이 된다는 말도 있어요. 물건(상품)과 부동산(공장)을 갖고 있는 기업에 유리하니 경제가 잘 돌아간다는 거죠. 하지만 그건 절대 경계해야 할 일이에요. 결과적으로 가진 자를 위해 덜 가진 자를 위협하는 셈이 되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하나만 덧붙일게요. 기업들이 돈이 없어 막 넘어진다고 할 때 어떤 학생들은 왜 한국은행이 돈을 찍어내면 되지 기업을 망하게 하는가고 의문을 품더군요. 이제는 그게 아닌 줄 알겠죠. 돈을 마구 찍어내면 어떻게 됩니까. 바로 인플레이션이 생깁니다. 그러면 서민들의 삶에 주름이 더 깊어지고 맙니다.

◇ 물가가 오르는 이유〓물건 값은 어떻게 정해지는지 아시죠. '사자' 는 수요와 '팔자' 는 공급이 만나는 점에서 가격이 결정됩니다.

만일 수요가 갑자기 늘면 어떻게 될까요. 당연히 값이 오릅니다. 또 공급이 줄면 역시 값이 오르게 마련입니다.

그런가 하면 인건비나 물건의 재료비가 올라도 사정은 같아집니다.

생산자는 그 비용을 소비자에게 떠넘겨 경영악화를 막으려는 속성을 갖고 있거든요. 요즘처럼 국제 기름값이 폭등을 하고 원자재 가격마저 불안해 질 경우 생겨나는 현상입니다. 교통비가 올라도 물건 값은 들먹이지요.

여기에서 우리는 두가지를 말할 수 있겠네요. 하나는 수요가 물가상승을 끌어간다 해서 수요견인(demand-pull)인플레이션, 다른 하나는 비용이 뒤에서 물가를 부추긴다 해서 비용인상(cost-push)인플레이션입니다.

또 하나가 있어요. 바로 시중에 돈이 얼마나 많은가 하는 점이에요. 경제학에선 이를 통화요인에 의한 인플레이션이라고 해요. 가령 시중에 돈이 많이 풀리면 자연 돈 값은 떨어집니다.

이는 바로 물건 값이 비싸진다는 의미와 같습니다. 그래서 물가상승이 불가피하게 됩니다.

◇ 물가도 여러가지가 있다〓그래요. 물가는 하나만이 아니에요. 흔히 물가하면 소비자물가를 의미합니다. 가장 생활과 밀접하기 때문이죠. 올해 물가상승률이 2.5%라 할 때도 바로 그것입니다.

소비자 물가지수는 재정경제부가 매달 발표합니다. 기준시점인 1995년 가계(집)에서 구입한 각종 물건과 서비스 등 5백9개 품목의 값을 100으로 하고, 달라진 가격을 계산해 내는 거죠. 따라서 생활수준의 향상이나 식구수의 변동, 자녀의 성장에 따른 소비와 지출규모의 변화는 포함되지 않습니다.

다른 하나는 생산자 물가입니다. 그것은 기업간의 대량 거래에서 형성되는 모든 상품의 가격변동을 측정한 것이에요. 한국은행이 서울을 비롯한 16개 주요 도시, 8백96개 품목을 대상으로 작성해 발표하고 있습니다.

조금 전문적이지만 '근원 인플레이션' (core inflation)도 알아둘 필요가 있을 것 같아요. 한마디로 그것은 한국은행이 물가상승의 여러 요인 중 통화에 의한 것만 추려 따로 작성하는 수치입니다.

통화정책을 효과적으로 수립.적용하기 위한 지표로 삼고 있답니다. 소비자물가 구성항목 중 농산물(곡물은 제외)과 석유류는 계산에서 제외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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