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솟는 국제유가…전망과 배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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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세계경제가 암초를 만났다. 바로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는 유가 때문이다. 석유전문가들은 10년래 최고가를 경신하고 있는 유가가 안정을 되찾을 가능성이 현재로선 희박하다는 전망을 내놓고 있다. 그 만큼 세계경제 앞날이 어둡다는 얘기다.

◇ 유가 왜 치솟나=가격안정의 기본원칙인 수요와 공급이 균형을 이루지 못한 게 첫째 원인이다.

미국을 중심으로 한 세계경제는 현재 회복세에 있다. 특히 아시아는 1997년 환란(換亂) 이후 지속적인 경제 회복기에 있어 어느 때보다 석유수요가 많다.

여기에다 북반구의 경우 겨울 난방용 원유수요까지 겹쳐 있다. 그런데도 공급은 6개월이 넘도록 수요를 쫓아가지 못하고 있다.

현재 전세계 석유 소비량은 하루 7천6백만배럴 정도인데 이런 추세가 계속된다면 올 4분기에는 1백80만배럴, 내년 1분기에는 2백70만배럴의 공급부족 현상이 발생할 전망이다.

사정이 이런 데도 석유수출국기구(OPEC)는 회원국들간의 이해 다툼으로 좀처럼 대량 증산에 나설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이처럼 수요.공급의 균형이 무너지자 일부 투기세력은 고유가가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보고 공격적으로 석유를 사들이고 있어 유가상승을 더욱 부채질하고 있다.

◇ 오일쇼크 때와는 무엇이 다른가=70년대의 오일쇼크나 90년의 걸프전 때는 중동지역에서 발발한 전쟁 때문에 짧은 기간에 유가가 폭등했다.

2차 오일쇼크 당시 유가는 현재 물가 수준으로 환산하면 배럴당 90달러에 달할 정도로 세계경제에 큰 충격을 줬다. 더구나 전쟁의 양상이 매우 복잡했던 만큼 유가가 어떻게 움직일 것인가에 대한 불안감도 상당히 컸다.

이번 사태의 경우 장기간에 걸쳐 진행되고 있어 세계경제에 급격한 충격은 아니지만 장기적으로는 상당한 타격을 줄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산업구조적으로 석유에 대한 의존도가 큰 아시아 국가들의 타격이 우려되고 있다.

실제로 메릴린치 증권은 배럴당 33달러시대가 내년까지 지속될 경우 한국의 경제성장률은 1.2%포인트 하락하는 등 아시아국 대부분의 경제성장률이 1%포인트 이상 하락할 것으로 전망했다.

◇ 유가 전망은=단기적으로는 오는 10일 열리는 OPEC 회의가 변수다. 전문가들은 대체로 이번 회의에서 하루 50만배럴의 증산을 결정할 것으로 전망하면서 이 정도로는 유가를 안정시키는 데 역부족일 것으로 평가했다.

OPEC는 지난 6월 회의에서 유가가 배럴당 28달러를 넘는 상황이 20일 이상 계속되면 자동적으로 50만배럴을 증산한다는 유가밴드제에 합의한 바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재 사우디아라비아가 비공식적으로 OPEC 할당량보다 많은 원유를 생산하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실제 증산효과는 제한적일 것이란 지적이다.

특히 베네수엘라.이란.이라크 등 강경파는 고유가가 지속돼야 석유 판매수입이 늘어난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이에 따라 골드먼삭스 등 일부 기관에서는 연말까지 배럴당 40달러, 내년에는 50달러를 넘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물론 국제사회의 유가안정 노력도 활발하다. OPEC의 릴와르 루크만 사무총장은 4일 독일 슈피겔지와의 인터뷰에서 "유가는 배럴당 25달러선이 공정하다고 믿으며 현재의 고유가가 계속될 경우 OPEC가 개입할 것" 이라고 말했다.

또 사우디아라비아의 자키 야마니 전 석유장관은 "고유가가 지속되면 대체연료 개발이 활발해져 결과적으로 석유시대를 끝내는 결과를 가져올 것" 이라며 산유국들의 증산을 촉구하고 나섰다.

미국 역시 OPEC에 공개적으로 증산을 요구하고 있고 유엔무역개발회의(UNCTAD)의장국인 태국은 4일 개발도상국을 대신해 원유증산을 OPEC와 논의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산유국들의 합의와 70만배럴이 넘는 획기적 증산이 이뤄질 가능성은 희박하다는 게 석유전문가들의 공통된 견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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