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점휴업’ 스팩 … 20개 중 19개 공모가 밑돌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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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9면

새로운 증시 상장 모델로 관심을 모았던 스팩(SPAC·기업인수목적회사)이 ‘용두사미’로 전락했다. 투자자들에겐 인수합병(M&A) 시장에 참여하는 기회를 열어주고, 우량 비상장업체는 쉽게 자금을 조달하게 한다는 취지였지만 두 마리 토끼 모두 도망간 형국이다. 스팩은 처음에 M&A를 위한 서류상 회사(페이퍼컴퍼니)로 상장한 후 합병할 회사가 선정되면 상장심사 등을 거쳐 최종 합병한다. 이후에는 합병회사 이름으로 증시에서 거래된다.

 16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지난해 3월 3일 상장한 ‘대우증권그린코리아’를 시작으로 지금까지 상장된 스팩은 총 22개에 달한다. 초기엔 100대 1이 넘는 청약 경쟁률을 기록할 정도로 인기를 끌었고 주가도 급등했다. 하지만 합병에 성공한 신영해피투모로우·에이치엠씨아이비제1호를 제외한 20개 스팩 가운데 19개 주가는 13일 현재 공모가를 밑돌고 있다. 주가가 최고점일 때 매수한 투자자라면 손실 폭은 더욱 크다.

 합병에 성공한 스팩도 2개에 불과할 정도로 합병 추진 속도도 더디다. 최근 들어 몇몇 스팩이 비상장업체와의 합병을 결정하고 상장 심사 결과를 기다리고 있지만 합병 완료까지는 거쳐야 할 과정이 적지 않다.

 투자자를 더 우울하게 하는 것은 합병 성공이 주가 상승의 재료가 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해 에이치엠씨아이비제1호와 합병한 ‘화신정공’은 공모가(2000원)를 밑도는 1665원에 거래되고 있다. 그나마 신영해피투모로우와 합병한 알톤스포츠가 공모가(1000원)보다 5배나 높은 5250원에 거래되며 체면을 세웠으나, 알톤스포츠라는 이름으로 변경 상장한 당일(6390원)보다는 주가가 많이 빠졌다.

 이렇게 부진한 성적을 내다보니 기업들도 답답해하고 있다. 스팩과의 합병을 추진하던 영품제약·엠에너지·썬텔 등은 아예 합병 계획을 접고 직접 기업공개(IPO)시장으로 향하고 있다.

 의욕적으로 출발한 스팩이 이처럼 부진한 원인으로는 ‘흥행 부진’이 첫 손에 꼽힌다. IPO를 추진하는 기업은 상장 전부터 적극적인 기업설명회(IR) 등을 통해 투자자들에게 존재를 알린다. 이와 달리 스팩은 IR이 거의 이뤄지지 않고, 별도의 공모 과정도 없다 보니 투자자 관심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하지만 최근 금융당국이 침체한 스팩 시장을 활성화하기 위해 자본환원율 제한 조치를 자율화하는 등 관련 규제를 완화하면서 숨통이 트일 전망이다. 또 주가가 공모가를 밑돌면서 투자 매력이 커졌다는 분석도 나온다. 스팩의 구조상 원금 손실을 볼 가능성이 작다는 게 그 이유다.

 스팩은 3년 안에 투자 대상을 선정해 합병을 완료해야 한다. 그 전까지는 공모자금의 90% 이상을 양도성 예금증서(CD) 같은 안전자산에 투자한다. 3년 안에 합병에 성공하지 못하면 이 돈을 다시 투자자에게 나눠주는데, 외부에 맡겨놓은 자금에 이자 등을 합치면 원금은 돌려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대우증권 대우증권 IPO부 조인직 팀장은 “합병에 실패하더라도 원금이 거의 보장되는 구조라 투자 매력이 높지만, 스팩시장이 워낙 침체돼 있다는 게 문제”라며 “확실한 스팩 투자 성공사례가 나와야 시장의 관심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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