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서울이 -13.8도? 체감 안 되는 체감온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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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경기도 화성의 자동차성능시험소에서 진행된 인제대 연구팀의 ‘한국형 체감온도’ 실험. 실
험자들의 얼굴에 센서를 부착하고 영하의 온도에서 바람의 세기를 바꿔가며 열흐름을 측정했다.

새해 첫 출근길인 2일 오전 7시30분 서울 종로. 찬 바람에 체감온도가 떨어진다는 날씨 예보 때문인지 거리를 지나는 사람들 옷차림은 두꺼웠다. 같은 시각 기상관측소가 있는 서울 송월동의 기온은 영하 8도, 풍속(1분 평균)은 3.6m/s, 체감온도는 영하 13.8도. 체감온도만 보면 남한의 최북단 도시인 철원·문산(철원 영하 14도, 문산 영하 13.8도)과 맞먹었다.

 종로를 지나는 행인 중 상당수가 남성은 양복에 무릎까지 내려오는 모직코트를, 여성은 두꺼운 패딩 점퍼를 입었다. 하지만 목도리를 친친 두르거나 두툼한 방한점퍼를 입은 이는 많지 않았다. 회사원 남동균(27)씨는 “일기예보처럼 그렇게 춥지 않다. 평소처럼 입고 나왔는데도 견딜 만하다”고 말했다.

 체감온도가 가리키는 영하 13.8도의 날씨를 실제로 체감하는 사람은 드물었다. 기상청 관계자는 “지표면보다 바람이 강한 지상 10m 높이에서 풍속을 측정하므로 실제 체감온도는 예보와 다르게 느껴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현재 기상청에서 발표하는 체감온도 모델이 우리나라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않을 수 있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기상청 모델은 미국·캐나다 연구팀이 개발한 공식을 따르고 있다. 이 모델은 2001년 미국 기상연구소(OFCM)가 캐나다 사람을 대상으로 만들었다. 남녀 캐나다인 각각 6명의 뺨·이마·코에 열감지 센서를 붙인 뒤 다양한 풍속과 기온에서 일반 보행 속도를 적용해 공식을 완성했다. 서울대 김광열(대기과학) 교수는 “체감온도를 파악하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은 바람이 피부에서 빼앗아가는 열의 크기”라며 “이것은 인종마다 다르므로 한국인을 대상으로 실험을 통해 측정방식을 새로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인제대 연구팀은 한국에서 미국·캐나다와 유사한 실험을 했다. 인제대 박종길(환경공학) 교수는 “연구 결과 서양인과 한국인은 얼굴의 열흐름과 걷는 속도가 달라 북미식 체감온도를 적용하기 힘들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말했다. 박 교수는 이 같은 내용을 담은 논문을 올해 초 대기환경학회지(Atmospheric Environment)에 실은 뒤 한국형 체감온도 공식을 개발할 계획이다.

 기상청도 한국형 체감온도의 필요성은 인정한다. 기상청 관계자는 “인체를 대상으로 한 실험엔 시간이 걸린다”면서도 “한국식 체감온도 산출 공식의 신뢰성만 입증되면 바로 사용하겠다”고 말했다. 기상 지수 중 자외선지수·불쾌지수의 경우 해외 모델을 쓰지만, 식중독지수·보건기상지수 등은 국내에서 개발됐다.

위문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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