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틴 선전 기계’ 수르코프 2선 퇴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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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틴의 선전 기계(propaganda machine)’로 불리며 러시아 정치 막후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해온 블라디슬라프 수르코프(47·사진) 대통령 행정실(비서실) 제1부실장이 사실상 2선으로 물러났다. AP통신 등 외신들에 따르면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러시아 대통령은 27일(현지시간) 수르코프를 부총리로 임명했다고 발표했다. 후임에는 뱌체슬라프 볼로딘 부총리가 발탁됐다.

 보리스 옐친 대통령이 집권하던 1999년 부실장에 임명된 그는 2000~2008년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 재임 때 핵심 참모로 일했다. 2008년 제1부실장으로 승진했다. 이 자리는 요직 중의 요직으로, 푸틴도 97년에 맡았다. 수르코프는 2000년대 중반 푸틴 정부의 대외 강경정책, 민간 분야에 대한 국가 통제 강화 등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주권 민주주의(sovereign democracy)’ 등 푸틴 정부의 통치 철학을 세운 인물이다. 집권 여당인 통합러시아당, 친정부 청년 친위대인 ‘나시’, TV방송을 푸틴의 통치수단으로 만든 것도 수르코프다. ‘푸틴 우상화 담당자’라는 얘기도 듣는 이유다.

 이번 인사에 대해 러시아 정치권에선 여러 얘기가 나오고 있다. 월스트리트 저널(WSJ)은 정치평론가 올가 크리시타노브스카야 러시아 학술원 엘리트학연구소장의 말을 인용해 “이번 인사개혁은 한 시대의 종말을 뜻한다”고 보도했다. 12만 명(주최 측 추산)이 몰렸던 24일 대규모 반정부 시위에 참가해 눈길을 끌었던 알렉세이 쿠드린 전 재무장관은 “이번 총선에서 통합러시아당이 참패를 하도록 이끈 장본인이 볼로딘 전 당수였다”며 “수르코프의 퇴진 결정은 러시아 정치권에 대한 (푸틴의) 전면적인 개혁 의지”라고 평가했다. 회전문 인사라는 혹평도 나왔다. 내년 대선 출마를 선언한 억만장자 미하일 프로호로프는 “이번 인사는 기존 정치인들의 자리만 바꿔준 격”이라며 “해고해야 할 무능한 관료들을 (메드베데프 대통령이) 왜 놔두는지 모르겠다”고 비난했다.

외신들의 반응은 싸늘하다. 영국 파이낸셜 타임스(FT)는 “수르코프 교체는 앞으로 정치 안정화(stabilization) 전략을 취할 푸틴 행정부 출범을 위한 희생양”이라고 평가절하했다. 뉴욕 타임스(NYT)는 “수르코프의 보직 이동은 그동안 정치권에 영향력을 행사해온 크렘린궁이 앞으로 국내 정치 문제에는 관여하지 않겠다는 신호로 해석된다”면서도 “이번 인사를 계기로 구체적인 개혁이 이뤄질지는 미지수”라고 전했다.

이현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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