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이정렬 판사, 서면 경고 뜻 새겨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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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판사에 대한 경고나 징계는 흔한 일이 아니다. 판사는 판단의 자율성이 최대한 존중되는 독립기관으로 예우받고 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뼛속까지 친미(親美)인…”이라는 발언으로 ‘판사 막말 시리즈’의 포문을 연 최은배 인천지법 부장판사에 대해서도 대법원장이 포괄적으로 법관의 품위를 유지하라는 주의를 촉구했을 뿐 개인에 대한 경고는 하지 않았다. 그러다 26일 창원지법원장이 막말 판사 3인 중 한 명인 이정렬 부장판사에 대해 ‘법관의 품위를 손상하는 표현이나 행동을 자제해 달라’고 서면 경고를 했다.

 이 부장판사가 지난 18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이명박 대통령을 비하하는 ‘시커먼 땟국물 꼼수면’ ‘가카새끼 짬뽕’ 등의 패러디물을 올린 것이 계기가 됐다. 한데 이 부장판사는 법원 측이 자신의 표현을 놓고 경고를 할 것인지 논의하는 와중에도 트위터를 통해 정봉주 전 민주당 의원에 대한 대법원의 판결을 겨냥해 “재판 결과의 안타까움과 실망, 배신감 등 그 심정을 충분히 이해한다”는 의견을 내기도 했다. 경고에 대해 아랑곳하지 않는 듯한 모습이었다.

 판사의 행동에 대한 제재 방법으로는 해당 법원장이 하는 구두·서면 경고가 있고, 대법원 징계위원회 회부가 있다. 구두·서면 경고는 징계법에 따른 징계절차는 아니고 주의를 촉구하는 수준이다. 명예를 존중하는 판사 사회에선 이 같은 경고도 불명예라고 생각해 행동을 조심하는 데 효과적이라는 것이다. 대법원 관계자는 “판사 개인에 대한 경고 자체가 흔치 않고, 서면 경고는 상당히 중한 것”이라며 “법원 차원에서도 판사의 돌출행동에 차근차근 대처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가카의 빅엿’ 발언으로 법원장에게서 구두 경고를 받았던 서기호 북부지원 판사의 경우 “경고가 아니라 선의의 말씀”이라며 오히려 이를 보도한 언론을 비난하기도 했다. 이번 서면 경고는 이렇게 무시당하지 않기를 바란다. 판사들까지 나서서 분란을 부추기지 않아도 이미 정국은 넘치도록 혼란스럽다. 이 와중에 그나마 사법부는 중심을 잡기 시작했다는 작은 믿음 하나 정도는 국민들에게 주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