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놈들 덕분에 우리 할아버지·할머니들 연말이 신나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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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5일 오후 서울 양천구 신정6동 경로당에서 KT ‘olleh 어린이봉사단’이 할아버지?할머니를 위해 준비한 캐롤송과 율동을 선보이고 있다. [김경록 기자]

지난 15일 오후 4시 서울 양천구 신정6동 경로당에 빨간 옷을 입은 꼬마 산타 12명이 등장했다. 모여 앉아 두런두런 얘기를 나누던 할아버지·할머니 30여명. 심심하던 표정들이 갑자기 환해졌다.

“할아버지·할머니랑 떡케이크 만들러 왔어요. 노래랑 율동도 보여드릴게요.”

아이들이 인사를 마치자 할아버지·할머니들은 신이 났다. “어유~, 고놈들 참 씩씩하네.” “선물 주려고 애기 산타들이 왔구먼. 허허.”

꼬마 산타들은 KT ‘olleh 어린이봉사단’ 소속 아이들이다. 지난 9월 KT가 서울 양천·중랑구와 경기 성남·부천·남양주 지역아동센터에서 20여명씩 100여명을 뽑아 꾸렸다. 함께 간 대학생봉사단의 도움으로 어르신 5,6명과 아이들 두 명이 짝 지어 떡케이크를 함께 만들기 시작했다.

“할머니 이 쌀가루 어떻게 비벼요?” 초등4년생 정수빈(11)양의 질문에 김삼순(89·서울 양천구) 할머니가 시범을 보였다. “채에 쌀가루를 놓고 이렇게 손으로 살살 문질러주면 되지.”

김 할머니는 “애기들이랑 같이 뭔가 한다는 것만으로도 참 즐겁다”며 같이 어린애가 됐다. 채로 거른 쌀가루가 케이크 모양으로 삶아져 나오자 모두 “와~”하고 탄성을 질렀다. 아이들은 호박씨와 대추로 케이크를 장식하고 상자에 넣어 할아버지·할머니 손에 하나씩 쥐어 드렸다.

“아유, 케이크가 이렇게 이쁜데 아까워서 어떻게 먹누.” 권오수(78·서울 양천구) 할머니의 말에 재건(11·초등4)이는 뿌듯해한다. 태어날 때부터 왼쪽 귀가 잘 안 들려 보청기를 끼고 있는 재건이는 “제가 하고 싶어서 봉사하는 건데 동생은 제가 누굴 돕는 게 신기하대요. 나중에 동생한테 같이하자고 할 거예요”라고 했다. “마음이 정말 뿌듯해지거든요.”

떡케이크 만들기가 끝나자 아이들은 상을 치우고 경로당 앞쪽에 한 줄로 섰다. 오카리나를 하나씩 꺼내 들고 지난 수개월간 연습한 캐롤 연주실력을 뽐냈다. 할아버지·할머니들이 박수를 하며 박자를 맞췄다. 이어 ‘루돌프 사슴코’ ‘울면 안돼’를 부르며 율동도 선보였다. 홍성희(84·서울 양천구) 할머니는 “막내 손자도 서른이 넘었어. 이런 재롱 보는 게 얼마만인지…”하며 아이들의 노래를 따라 불렀다.

olleh 어린이봉사단은 도움을 받아온 지역아동센터 아이들에게 거꾸로 봉사활동의 기회를 주자는 취지로 만들어졌다. KT는 성남시를 비롯해 목포·원주·대전 등 18개 지역에서 ‘KT 꿈품센터’를 운영하며 지역아동센터 아이들에게 미술·음악·IT체험 기회를 제공해오고 있다.

“받는 입장에서 벗어나 나누는 기쁨도 함께 알아갔으면 하는 마음이죠.” KT사회공헌팀 이덕순 팀장은 “프로그램도 일방적으로 제공하지 않고 오리엔테이션 시간을 가지며 스스로 원하는 봉사활동을 고를 수 있도록 운영 중”이라고 소개했다.

아이들은 한 달에 한 번씩 홀어르신(독거노인) 가정에 도시락을 배달하고, 경로당에 찾아가 위문공연을 하거나 환경정화·나눔바자회 등의 봉사활동을 한다. 서울 양천구와 경기 부천시 어린이봉사단 20여명은 지난 9월 구성되자마자 부천시에 사는 홀어르신 10여 가정에 도시락을 갖다 드렸다.

양천구 지역아동센터협회 이은영 회장은 “9월 독거노인 가정에 도시락 배달 봉사를 했던 아이들이 ‘빨리 또 봉사활동 가자’고 조르더라”면서 “봉사를 통해 지역 어르신들을 만나 사랑 받고 칭찬을 들으며 아이들의 자신감이 많이 커지는 것 같다”고 말했다.

아이들의 봉사현장에는 olleh 대학생봉사단원들도 함께 참여한다. 보조교사 역할이다. 지난 5월 100여명의 대학생으로 만들어진 olleh 대학생봉사단은 서울·경기·부산 등의 지역아동센터와 각 지역 KT 꿈품센터에서 멘토링·학습 봉사를 하고 있다. 이날 봉사자로 참여한 최규준(24·수원대 신소재공학 4)씨는 매주 월요일 부천 샘터지역아동센터에서 중1,2학년 학생들에게 수학을 가르친다. “봉사활동을 즐겁게 하는 아이들 모습을 보면 가끔씩 봉사가 힘들다고 투정 부렸던 내 모습을 반성하게 돼요. 아이들한테 배우는 거죠.”

오는 28일 양천구 olleh 어린이봉사단원들은 직접 만든 쿠키를 들고 신정6동 경로당 할아버지·할머니를 한번 더 만날 예정이다. 21일부터 29일 사이에는 성남·부천·남양주·중랑 지역 어린이봉사단원들도 일일 꼬마 산타로 변신해 떡케이크·쿠키·입욕제 등을 만들어 경로당·노인복지시설을 찾아간다.

윤새별 행복동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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