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단! TV 선정·폭력 '어디까지 왔나'

중앙일보

입력

지난 주말 가족시간대의 한 오락프로그램. 높다란 다이빙대 위에서는 뛰어 내리려는 여자 출연자의 모습이 위태롭다.

다이빙의 성공 여부 때문만은 아니다. 카메라가 주목하는 것은 두 손을 앞으로 모아서 한층 도드라져 보이는 출연자의 가슴 부위. 급기야 다이빙하면서 말려올라간 비키니 수영복 아래로 가슴이 노출되는 '방송사고' 까지 벌어졌다.

같은 주말 또다른 방송사의 오락프로그램. 외국 미인대회에 출전한 여성들이 실리콘과 패드로 가슴과 엉덩이를 두드러지게 만드는 방법을 미주알 고주알 일러준다.

'비키니 차림의 미녀' 는 어느새 오락프로그램에서 빠지지 않는 장면이 됐다.

보도.교양 프로그램이라고 예외는 아니다. 올 상반기 선정성.폭력성을 이유로 방송위의 제재를 받은 프로그램은 33건. 성인인터넷채널의 현황.문제점을 다룬 모방송사 보도물은 성인채널 진행자가 치마를 들어올리는 선정적인 포즈를 "팬서비스… 화끈하게 보여드립니다" 하는 멘트와 함께 고스란히 방송해 방송위의 경고를 받았다.

김정기 방송위원장은 "뉴스를 부각시키기 위해서 선정적인 영상을 보여주는 사례가 늘고 있다" 면서 요즘 보도물에 대해 우려를 보였다.

드라마의 표현수위도 대담해졌다. 모방송사의 드라마는 남녀가 호텔방에서 서로 옷을 벗기는 첫 회 장면을 어린이 시청시간대에 예고 방송으로 내보내 방송위의 경고를 받았다. 경쟁이 치열한 미니시리즈 시간대에 편성된 모방송사의 프로그램은 첫 회에 그다지 노출이 어울릴성 싶지않은 주인공의 비키니 차림, 해변에서 스스럼없이 옷을 갈아입는 장면을 내보냈다. 이같은 '시선끌기' 전략의 배후에는 물론 시청률 경쟁이 자리한다.

문제는 이같은 선정성이나 폭력성을 과거와 같은 일률적인 잣대로 규제하기가 힘들다는 점. 방송위원회 공보팀의 김성욱씨는 화면상의 노출 뿐만 아니라 토크쇼 등 온갖 프로그램에서 범람하는 성적인 표현의 문제를 지적하면서 "빈도가 아니라 정도가 문제인 단계" 라고 표현했다.

김정기 방송위원장도 "현행 심의규정을 노골적으로 위반하지 않더라도 도덕적.윤리적인 면에서 시청자 정서에 어긋나는 표현들이 급증하고 있다" 면서 "그런 차원에서 더욱 더 방송사의 자율 심의 강화를 촉구하는 것" 이라고 말했다.

방송현장에서도 획일적인 규제에 대해서는 할말이 많다. SBS 배철호부장은 "여름철 수영장에서 촬영하는 오락 프로그램에서 수영복 차림은 어떻게 보면 당연한 일이 아니냐" 고 반문한다.

하지만 YMCA시청자시민운동본부의 안수현간사는 "노출도 노출이지만, 그런 차림의 출연자를 아래 위로 훑는 카메라 앵글의 문제가 더 심각하다" 고 비판했다. 안 간사는 "문광부나 방송위의 이번 의지가 앞으로 시행될 프로그램 등급 심의를 더욱 강화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고 말했다.

요즘 방송가에서 대두되고 있는 선정성 문제에 대처하기 위해서는 한층 정교한 제도적 장치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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