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요금보다 싼 화장품 보셨나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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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8면

“통큰치킨 봤어요? 저가 화장품 업체에 밀렸지만 거기서 승부를 내는 겁니다. 결국 가격이에요, 가격.”

 지난해 12월, 한불화장품 임원회의. 임병철(52·사진) 사장이 임원들을 다그치며 목소리를 높였다. 한 마리에 5000원이던 롯데마트 통큰치킨이 사회 문제로까지 확산될 무렵이었다. 800원짜리 마스크시트, 3900원짜리 립스틱 등을 주력 상품으로 내세운 초저가 브랜드 이네이처는 그렇게 시작됐다.

 임 사장은 한국화장품의 창업자 임광정(92) 회장의 셋째 아들이다. 아버지 밑에서 일하다 1989년 한불화장품을 설립했다. ‘패션화장품’이란 모토를 내건 한불은 매년 20%씩 매출을 키우며 창립 10년 만에 업계 4위 업체로 성장했다.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직후에도 씨티그룹으로부터 1000만 달러를 투자받는 등 성장세를 유지했다.

 시련이 닥친 건 2003년. 카드대란이 원인이었다. 카드로 결제하던 방문판매 매출이 절반 이하로 떨어진 것이다. 방문판매는 전체 매출의 3분의 2가량을 차지하고 있었다. 나머지 매출을 차지하던 동네 화장품 가게 역시 IMF 이후 경기가 위축되면서 하락세를 거듭하고 있었다.

 사실 재기의 기회가 없었던 건 아니다. 동네 화장품 가게가 무너지면서 2002년 ‘3300원짜리 화장품’을 파는 브랜드숍이 속속 생겨났다. 미샤·더페이스샵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한불은 ‘비쌀수록 잘 팔린다’는 업계 불문율에 발목 잡히는 바람에 진입 시기를 놓쳤다. 현재 한불의 매출은 월 70억원 수준. 2002년 150억원이던 것에 비하면 절반에도 못 미친다.

 임 사장이 통큰치킨에 영감을 받은 건 그래서였다. “양극화 심화로 소비자들은 가격에 민감해졌다. 그런데 저가화장품으로 인기를 끈 브랜드숍 제품은 1만원을 호가한다”는 생각에 이른 것이다. 당장 태스크포스(TF)팀을 꾸렸다. 회의를 직접 주재하며 진행 상황을 일일이 챙겼다.

 1년도 안 돼 버스 요금보다 싼 마스크시트가 탄생했다. 27일부터 인터넷을 통해 판매된다. 온라인 판매 전략을 택한 건 초저가를 유지하기 위해서다.

 소비자들이 과연 800원짜리 화장품을 믿고 살까. 한불화장품 측은 “20년 이상 된 생산 노하우를 기반으로 식물 추출 성장세포 배양액을 함유했다”고 강조했다. 임 사장은 “ 화장품 명가(名家)로서의 명성을 한불이 되찾아 오겠다”고 자신했다.

정선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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