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열린 광장

정당공천제가 지자체 세금 낭비 부른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3면

탁경명
강원방송 고문
춘천연탄은행 운영이사

지방자치단체(지자체)들의 세금 낭비에 따른 빚더미가 무려 17년 동안 어떻게 계속돼 왔을까. 뼈를 깎아 내는 세금을 쌈짓돈처럼 펑펑 써대는데도 브레이크 장치 없이 그냥 두고만 봤을까. 인천광역시와 강원도 태백시가 워크아웃(재무구조 개선작업)될 처지라는 실상이 드러나도록 정치권과 정부는 뭘 했나. 지자체의 지방채 발행 승인권을 갖고 있는 행정안전부가 수수방관할 수밖에 없었던 속사정은 뭘까.

 이런 의문에 대한 원인이 무엇인지 딱 부러지게 나온 적이 없다. 현재 전국 지방자치단체 빚은 20조원이 넘고, 산하 공기업 부채도 50억원을 웃돈다. 강원도의 경우 알펜시아 리조트 사업이 재정위기 경보단계를 넘어섰으나 지방채 발행이 반복 승인돼 총 사업비 1조7000억원 중 빚이 9921억원이란 상식 밖의 현상이 빚어졌다. 그런데도 지자체의 빚더미는 왜 늘어만 갈까. 기초자치단체장과 지방의회 의원들의 정당공천제에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단체장과 같은 당 소속 지방의원 수가 많을 경우 각종 사업 승인에 대한 반대쪽의 시정 요구도 아랑곳없이 투표로 판가름 나고 만다. 강원도의 알펜시아 리조트 빚이 1조원에 가까운 상식 밖의 결과도 당시 도지사와 같은 당 소속 지방의원이 절대다수였던 상황에서 무사통과로 이어졌다. 지방의회는 빚더미의 회계감사 한 번 하지 않았을 정도다. 태백시도 그랬다. 성남시의 호화 청사 건립도 마찬가지였다. 같은 당 단체장과 지방의회 의원들의 손뼉이 마주치면 제멋대로 사업이 되고 있다. 전국 빚더미 지자체들의 속내를 들춰보면 하나같이 단체장과 같은 당 소속 지방의원 수가 반수를 넘었다. 세금 낭비 빚더미 수렁에 빠져들게 됐는지 그 해답이 여기에 있다. 만약 같은 당 소속 단체장의 사업계획에 대해 시시비비를 가리고 토를 달면 다음 공천에서 탈락되고 만다. 이런 자치단체와 지방의회의 구조적 모순 관계 때문에 지자체가 중병의 수술대에 올랐다.

 기초단체장과 지방의원 공천권은 지역구 국회의원의 힘이 큰 까닭에 단체장과 지방의원 관계가 같은 당 소속이 아닐 경우 의원들의 힘겨루기 때문에 단체장의 소신 행정이 어렵다. 풀뿌리 민주주의라는 거창한 명패를 달고 출범한 우리 지방자치제는 국회와 정부 간의 관계처럼 악순환으로 깊숙이 빨려들고 있다.

 강원도 내 18개 시장·군수들은 최근 기초자치단체장들의 정당공천제를 폐지해줄 것을 국회 등에 건의하며 소리 높여 외쳤으나 하늘 보고 고함친 격이다. 국민의 공복(公僕)이란 선출직 공직자들이 나라와 지방 살림을 거덜 내는 세금 낭비가 쉽게 고개를 숙일지 의문이다.

 태백시가 첫 사례로 워크아웃당할 지경에 이르는 등 전국 곳곳에서 빚더미 자치단체 문제가 속속 드러나고 있다. 국회는 이런 사정을 훤히 알면서도 모르는 체 입을 다물고 있다. 국회의원이 지역세를 넓히는 막강한 힘인 지방의원 공천으로 기득권을 유지하려 한다. 그러나 주민들은 더 이상 참고만 있지 않을 태세다. 원성과 불만이 터져 나오고 있다. 미국 뉴욕 월가의 청년시위가 전 세계로 확산되는 시점에서 우리나라의 경우 정치권에 대한 유권자의 불신과 불만이 폭발할까 염려된다.

탁경명 강원방송 고문·춘천연탄은행 운영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