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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 암행어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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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7면

안희창
수석논설위원

이명박(MB) 정부는 안보상의 문제가 터질 때마다 곤욕을 치러 왔다. 이 대통령을 위시해 현직 국무총리·국정원장·외교부 장관에 안상수 전 한나라당 대표 등 정권수뇌부가 군복무를 하지 않아 제대로 대처를 못했다는 이유에서다. 그러나 그렇게 도식적으로 비판할 일은 아니다. 100% 관련이 없다고 보기는 어려워도 직접적인 인과관계는 없기 때문이다.

 군통수권자의 병역필 유무가 안보상 대응능력에 결정적 요인이라면 군의 문턱에도 가본 적 없는 마거릿 대처 전 영국총리는 어떻게 아르헨티나와의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나.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국은 군복무 경험이 없는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의 지휘하에서 어떻게 승리를 거둘 수 있었나. 군통수권자의 유니폼 착용 여부가 아니라 안보에 대한 통찰력이 어느 수준이냐가 관건이다. 그의 안보철학에 얼마나 혜안이 담겨 있으며, 군대에 대한 관심은 어느 정도이며, 이에 따라 군 인재들을 적재적소에 기용할 수 있느냐의 능력에 달린 것이다.

 이런 점에서 MB정부는 실망스러운 행태를 보여 왔다. 대표적인 사례가 지난해 연평도 피격 사태다. 치욕적인 천안함 사태를 겪었으면 어떻게 해서라도 그런 어이없는 대처가 재발되지 않도록 각고의 노력을 기울였어야 마땅하다. 그러나 그렇게 하지 못했다. 물론 안보총괄점검회의를 개최하는 등 나름대로 대응책은 강구했으나 내실을 기하지 못했다. 회의에선 사병 군복무 단축을 환원하느니, 합동군 사령부를 만드느니 했지만 군 내부는 헛돌았다. 천안함 사태를 놓고 육군은 해군에, 해군은 육군 일색의 합참에 각각 책임을 전가하려는 모습을 보였다.

 연평도 사태가 벌어지기 전 북한은 서해 북방한계선(NLL) 북측 지역으로 몇 번 포를 쏘더니 8월 9일엔 NLL 넘어 포격을 가했다. 하지만 우리 레이더는 어디에서 날아온 것인지조차 파악하지 못했다. 합참은 서해 5개 도서 방어와 관련, 해군과 해병대 간의 지휘라인에 허점이 많은 문제를 방치했다. 연평도 피격 당일엔 ‘확전되지 않도록 관리하라’는 청와대의 무책임한 지시가 보도되기도 했다. 청와대는 ‘페이퍼상의 대책’을 마련하는 데 그쳤다. 정작 인재가 적재적소에 배치됐는지 등 군 내부의 실상에 대해선 정확한 정보도 부족한 데다, 이를 제대로 파악하려는 열성도 보이지 않았다.

 천안함 이후 조선왕조 시절의 ‘암행어사’라도 부활해 군통수권자가 생생한 군의 문제점을 보고받고 이를 해결하기 위한 결단을 내렸다면 연평도 피격과 같은 어이없는 대처는 피할 수 있지 않았을까. 최근 불거진 ‘6·25 전쟁 전사자 보상금 5000원’ 파동을 보면 더욱 그렇다. 국회에서 이 문제가 거론된 게 지난 6월 13일이었다. 그러나 국방부와 국가보훈처는 규정 문제를 놓고 책임을 미루다 시간만 보냈다.

 군인의 희생과 명예, 이에 대한 국가의 책무가 얼마나 소중한지 ‘군대를 갔다 오지 않은 사람’은 혹시 모를 수 있다. 그러나 명색이 ‘국방부’이고 ‘국가보훈처’라는 곳에서 이런 어이없는 일이 발생했다는 것은 국가기강에 나사가 풀려도 한참 풀린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 그나마 국민권익위원회라는 정부기능이 있어 이 문제를 지적해준 것이 다행이다. 그러나 제대로 된 나라라면 청와대나 국정원이 먼저 챙겼어야 했다. 군통수권자가 더욱 국방 문제에 관심을 표명하면서 신상필벌의 매서운 리더십을 보여주고, 보좌진은 해당부서 현안을 국민의 입장에서 조정, 해결하려는 열성을 보여야 한다. 그래야 끊임없이 터져 나오는 군 관련 악재가 사라질 것이다.

안희창 수석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