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이 반한 한국 (36) 피터 월쇼 그랜드 하얏트 서울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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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서울타워에 오르면 탁 트인 시야

내가 한국에 처음 온 것은 1991년 3월이다. 그랜드 하얏트 서울 총지배인으로 서울에 왔고, 20년이 지난 지금도 나는 그랜드 하얏트 서울 총지배인을 맡고 있다.

 처음 한국에 도착했을 때, 나는 한국에 산이 많은 걸 보고 깜짝 놀랐다. 특히 서울은 한강이 도시 중앙을 가로지르는 동시에 높은 산이 성곽처럼 둘러싸고 있었다.

 그 도시 한가운데 남산이 있다. 해발 265m밖에 되지 않지만 남산은 정상에 올라서면 서울의 풍광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남산은 자체로 훌륭한 전망대이지만, N서울타워에 올라서면 그야말로 하늘에 서 있는 것처럼 서울을 360도로 둘러볼 수 있다.

 나는 내 직장이 남산에 터를 잡고 있는 것이 큰 행운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종종 나를 포함한 우리 호텔 직원이 남산에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이 있을까 생각하곤 한다. 하얏트 기업은 해마다 전 세계에서 동시에 ‘직원의 날’을 정해 행사와 캠페인을 펼치는데, 그랜드 하얏트 서울의 경우는 해마다 남산 가꾸기 사업을 진행한다. 200명이 넘는 직원이 호텔을 출발해 남산 정상까지 다 함께 걸으며 주변을 정비한다. 몇 해 전에는 남산 가로수 아래 철골 구조물을 제거하고 풀을 심기도 했다. 이제는 그때 심은 풀이 제법 자라 있어 볼 때마다 뿌듯한 마음이 든다.

 내가 처음 남산에 오른 것은 1991년 봄이었다. 그때 남산의 모습은 지금과 많이 달랐다. 산에 오를 수 있는 길이 매우 제한적이었다. 길 대부분이 막혀 있었다고 해도 틀리지 않는다. 남산 살리기 사업을 통해 훌륭한 공원이 조성돼 있는 지금 생각해보면 참 먼 옛날 일처럼 느껴진다. 지금 남산은 서울 시민의 안식처다. 잘 정비된 산책로, 야생화 꽃길, 울창한 나무 등 전 세계 어느 도심 공원 못지않다.

 남산은 오늘도 변하고 있다. 최근 눈에 띄게 남산을 걷고 뛰는 사람이 늘었는데, 나도 이들 중 한 사람이다. 호텔을 출발해 N서울타워까지 오르는 코스를 즐긴다. 하얏트는 남산의 야생화 공원과 구름다리로 이어져 있다. 붉은 아스팔트를 따라가면 도심 속에서도 시원한 공기를 마실 수 있는 야생화 공원을 만날 수 있다. 전국 8도에서 옮겨 심었다는 소나무 숲과 꽃나무 그리고 각기 다른 야생화가 가득하다. 봄이면 산토끼와 꿩이 노닐고, 작은 연못에 도롱뇽 알이 살고 물방개가 헤엄을 친다. 야생화 공원을 한 바퀴 둘러본 다음 길을 오르면 수복천 약수터가 나온다. 약수 한 잔이 피로와 스트레스를 말끔히 날려준다. 선선한 바람과 함께 N서울타워에 올라서면 화려한 스카이라인 아래 역동적인 도시 서울이 모습을 드러낸다.

 N서울타워 반대편으로 가면 북측 순환 산책로와 이어지는 서울 성곽길을 만날 수 있다. 북측 순환 산책로는 봄에는 벚꽃이 흐드러지고 라일락의 아늑한 향이 퍼지고, 여름에는 산책로를 따라 졸졸 흐르는 물소리와 우거진 나무 향이 그득하고, 가을에는 한 폭의 수채화 같은 형형색색의 단풍과 은행나무로 둘러싸인 예쁜 산책로가 된다. 북측 순환 산책로는 계절마다 다른 색깔을 띤다.

 성곽길을 지나 지하철 충무로역까지 가면 남산골 한옥마을이 나온다. 이렇게 남산과 한옥마을을 둘러 충무로까지 내려오면 3시간 남짓 걸린다. 만만한 거리는 아니라는 얘기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개와 함께 산책을 하곤 했는데, 충무로역 즈음에 다다랐을 때 개가 지쳐서 택시를 타고 집에 왔던 일도 있다.

남산 오른 뒤엔 어김없이 된장찌개

남산을 오른 뒤 빼놓지 않는 게 있다. 된장찌개다. “20년 동안 한국에 살면서 가장 맛있는 한국 음식이 무엇인가”라고 물으면 나는 주저 없이 “된장찌개와 차진 쌀밥”이라고 대답한다. 나는 된장찌개의 뭐라 표현할 수 없는 구수하고 깊은 맛에 매료돼 한식을 먹으러 가면 항상 된장찌개를 주문한다. 한국에서는 그 집 음식 맛은 장맛에서 나온다고 말한다. 한국 생활 20년이 되니 나도 장맛을 가늠할 경지에 이르렀다. 된장찌개 한 입만 먹어보면, 집에서 담근 장인지 수퍼마켓 장인지 정도는 구분할 수 있다.

 호텔리어의 가장 큰 장점은 세계 여러 곳을 돌아다니며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의 문화를 경험할 수 있다는 점이다. 하지만 나는 한국에 처음 부임하던 날부터 한국에 매료되었고, 한국은 내게 제2의 고향이 되었다. 내 삶의 터전이자 안식처인 남산은 한국에서의 삶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어 더 큰 의미가 있다. 지난 20년 동안 나는 남산에서 서울의 역사와 문화, 그 빠른 성장과 변천을 지켜봤다. 나는 오늘도 남산을 오르며 남산의 에너지를, 한국의 정기를 마신다.

정리=손민호 기자
중앙일보ㆍ한국방문의해위원회 공동 기획

피터 월쇼(Peter Walshaw)

1952년 출생. 1983년 하얏트 인터내셔널에 입사해 뉴질랜드 하얏트 킹스게이트 퀸스타운 총지배인을 시작으로 아랍에미리트 하얏트 리젠시, 뉴질랜드 하얏트 오클랜드를 거쳐 1991년 하얏트 리젠시 서울 총지배인으로 부임했다. 1994년 전 세계 하얏트 호텔 중 가장 뛰어난 총지배인에게 수여되는 ‘올해의 총지배인’상을 수상했고, 현재까지 그랜드 하얏트 서울 총지배인이자 대표이사 사장직과 동시에 한국의 4개 하얏트, 마이크로네시아 2개 하얏트를 총괄하는 부사장직을 겸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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