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 친구와 잘 어울리는 법, 선생님한테 배웠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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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금천구 탑동초등학교 6학년 4반 문성환 교사(맨 뒷줄 오른쪽 끝)는 일주일에 세 번 방과후 아이들에게 체육봉사교육을 하고 있다. [최명헌 기자]

지난 4일 오후 2시 서울 금천구 탑동초등학교 6학년 4반 교실. 26명의 아이들은 빨간 야구복과 하얀 운동바지 차림으로 담임선생님 말씀에 귀기울였다. “정진학교 친구들이 26일 우리 학교로 오는 거 알죠? 그날 여러분이 직접 체육활동을 진행할 거에요.” 문성환(37) 교사의 말이 끝나자 네 팀으로 나뉘어 앉은 아이들이 토의를 시작했다. 4팀의 팀장인 박나영 양은 흰 종이에 ‘걷기 힘든 친구를 데리고 다닐 방법’이라고 쓰고 팀원들의 의견을 물었다. 홍유진 양이 “제 짝꿍 혜지(가명)는 휠체어를 타요”라고 나서며 “저는 혜지 옆에 계속 있는 게 좋겠어요. 공도 던져주고 휠체어도 밀어주면서 혜지가 심심하지 않게요”하고 말했다.

탑동초 6학년 4반 아이들은 서울 구로구의 지적장애 특수학교인 정진학교 6학년 아이들과 일대일 결연을 맺고 있다. 지난달 30일 청와대에 함께 현장학습을 다녀온 데 이어, 오는 26일에는 정진학교 친구들이 탑동초에 직접 방문한다. 문 교사가 해마다 자신이 담임을 맡은 학급 아이들과 정진학교 아이들을 결연시켜 1년에 7~8번씩 통합수업을 진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2008년 정진학교에 과학활동 강의를 나간 것을 인연으로 학급결연을 시작한 지 올해로 4년째다.

정진학교의 남미영(42) 교사는 “함께 야외로 현장학습을 가거나 학교에서 체육활동을 할 때 탑동초 아이들이 우리 아이들을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며 도와주고 대화상대가 돼준다”며 기특해했다. 남 교사는 “장애아동에 대해 완벽한 지식을 가진 아이들은 아니지만 순수한 마음으로 함께 어울려주는 것만으로도 큰 교육효과가 있다”며 “덕분에 우리 정진학교 아이들 중에 성격이 밝아진 경우도 많다”고 말했다.

문 교사는 서울교대 4학년이던 2000년 특수학교에서 교생실습을 하면서 나눔과 봉사교육에 관심을 갖게 됐다고 한다. 그는 우선 2002년부터 반 아이들을 데리고 양로원·고아원 등으로 봉사활동을 다녔다. 아이들이 진심으로 봉사활동에 참여하도록 만들고 싶었던 그는 “그러려면 먼저 튼튼한 몸과 마음을 만들어줘야 할 것 같아 방과 후 스포츠활동을 시작했다”고 말했다. 아이들에게 체력과 협동심을 길러주는 방법이었다.

올해의 경우 아이들과 월·화·금요일 방과 후에 ‘티볼’과 ‘뉴스포츠’ 활동을 함께 한다. 티볼은 야구 규칙을 간소화한 어린이 운동이고, 뉴스포츠는 배드민턴이나 원반던지기를 변형한 게임이다.

또 7년 전부터는 아이들이 배려하고 존중하는 마음을 배우도록 서로 높임말을 쓰게 했다. 문씨의 높임말 교육은 다른 교사들의 지지를 받아 올해부터 탑동초 5·6학년 모두 친구들과 대화할 때 높임말을 쓴다. 이날도 “누가 가장 봉사에 열심이냐”는 기자의 질문에 아이들은 “여민님이요”라고 대답했다. 서로의 이름을 부를 때는 ‘님’자를 붙이는 것이다.

‘봉사짱’으로 지명된 윤여민 군은 나름대로 터득한 봉사 노하우도 있었다. “1학기 정진학교 짝꿍이 저보다 키가 훨씬 컸어요. 저를 무시하고 손도 뿌리쳐서 친해지기 힘들었죠. 그렇게 고집을 부릴 때는 막무가내로 막기보다 잠시 내버려두면 지루해져서 곧 관둬요. 그럴 때 ‘이거 하자’고 하면 잘 따라오더라고요.” 지난해부터 굿네이버스를 통해 케냐 어린이를 돕고 있다는 현수빈 양은 “한 달에 2만원씩 기부하는 것도 기분 좋지만 정진 친구들을 만나 직접 도와 주는 게 더 뿌듯해요”라고 말했다. 현 양은 “제가 눈 나빠서 안경 쓰는 것처럼 장애도 어딘가 불편한 것 뿐이라는 걸 알게 됐어요”라고 말했다.

학부모 참여도 활발하다. 통합수업 날이면 5~6명의 어머니들이 직접 만든 간식을 챙겨온다. 현 양의 어머니 윤영미(39·금천구 시흥동)씨는 “수빈이가 방과후 스포츠활동과 규칙적인 생활 덕에 살이 9kg이나 빠졌어요. 6학년 되더니 안 쓰던 존댓말도 쓰고요. 아이의 긍정적인 변화를 보니 저절로 학급 활동을 돕게 돼요”라고 말했다. 윤 군의 어머니 김용자(41·금천구 시흥동)씨도 “제가 노인 무료급식봉사에 함께 가자고 할 때는 따라오지도 않던 여민이가 이제는 통합수업에도 즐겁게 참여하는 모습이 신기하다”고 말했다.

문 교사의 나눔교육은 동료 교사들에게도 전파되고 있다. 5학년 4반 이협주(38) 교사의 경우 또 다른 특수학교인 정문학교 5·6학년생과 2년째 학급결연활동을 하고 있다. 이 교사는 “이기적인 아이들도 통합수업을 하면 자연스럽게 돕는 데 동참한다. 통합수업 후 일지를 걷는데 아이들이 무언가 해냈다는 성취감을 보이더라”고 말했다. 탑동초 이성남(57) 교장도 이런 통합수업의 든든한 지지자다. 이 교장은 “안전문제로 통합수업을 진행하기 주저하는 학교들이 많다. 하지만 장애 있는 친구들을 도우며 직접적으로 배려심을 배우고 편견도 없애기 바라는 마음으로 통합수업을 지원하고 있다”고 말했다.

방과후수업이 끝나면 문 교사는 반 아이들을 한 명 한 명 안아준다. 아이들의 신체적인 건강 못지않게 마음 건강도 중요하다는 생각에서다. “진심으로 봉사에 참여하는 아이들을 볼 때 가장 기뻐요. 앞으로도 아이들의 마음에 나눔의 싹을 심어주고 싶어요.”

글=윤새별 행복동행 기자
사진=최명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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