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판 KT ‘시간 변칙’ 작전 … SKT ‘가격 변칙’ 작전 응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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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4세대 LTE용 ‘황금주파수’ 1.8기가헤르츠(㎓) 경매는 82회차까지 가는 접전이었다. 결국 SK텔레콤이 거머쥐었지만, KT도 전파 특성이 우수한 800메가헤르츠(㎒) 주파수를 상대적으로 저렴한 가격인 2610억원(경매 시초가)에 가져가는 ‘절반의 성공’을 거뒀다. 그러나 국내 최초로 시행한 주파수 경매에 대해선 각계로부터 거센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1.8㎓의 낙찰가(9950억원)가 시초가(4455억원)의 두 배를 넘어 참여 기업들이 퇴로 없는 치킨게임을 벌일 수밖에 없도록 한 정부의 책임이 크다는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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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내 숨긴 KT, 휘말린 SKT=주파수 경매 논의가 본격화한 건 올 2월이다. 방송통신위원회가 2.1㎓ 주파수의 20㎒ 대역 폭에 대한 연내 경매 방침을 정한 것. 4월엔 1.8㎓의 20㎒ 폭도 경매 대상으로 떠올랐다. 이때부터 KT·SK텔레콤·LG유플러스, 이동통신 3사의 피 말리는 수 싸움이 시작됐다.

  당시 가장 적극적으로 움직인 건 LG유플러스였다. 경쟁사들에 비해 열악한 주파수 환경을 이유로, 쓰임새 많고 효율적인 2.1㎓의 단독 입찰을 주장했다. 방통위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을 때 KT가 묘안을 냈다. 800㎒ 주파수의 10㎒ 폭도 경매에 포함시키면 어떻겠느냐는 것이었다. 그렇게 하면 2.1㎓를 LG유플러스가 가져가도 경매 대상 주파수가 2개로 늘어 방통위의 부담이 크게 줄게 된다. 방통위 고위 관계자는 “KT가 ‘800㎒가 경매에 포함되면 여기 입찰할 생각이 있다. SK텔레콤도 관심이 클 것’이라며 적극적으로 설득했다”고 털어놨다. 방통위는 이 의견을 받아들여 LG유플러스에 2.1㎓ 단독 입찰을 허용하는 한편 800㎒도 경매에 포함시켰다. 하지만 이는 SK텔레콤이 경쟁력 뛰어난 2.1㎓를 가져가지 못하게 하는 한편, 애초 욕심 있던 1.8㎓를 비교적 손쉽게 가져오기 위한 KT의 고도의 전략이었다.

◆방통위 오판, 출혈경쟁 불 질러=17일 실제 경매가 시작되자 KT는 800㎒가 아닌 1.8㎓ 경매에 우선 참여했다. 1.8㎓를 확보할 경우 기존에 갖고 있던 같은 대역의 20㎒ 대역폭과 연동해 경쟁사보다 2배 빠른 LTE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SK텔레콤 역시 이를 잘 아는 만큼 1.8㎓에 ‘올인’하는 모습을 보였다. SK텔레콤 고위 관계자는 당시 “KT에 최고의 무기를 쥐여줄 순 없는 일 아니냐”며 “우리는 어떤 희생을 치르더라도 이 대역을 확보할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SK텔레콤은 초반 열세가 확연하자 특단의 조치를 했다. 지난달 말 경매 전략을 총괄할 대외협력부문장 자리를 새로 만든 뒤 이형희(49) 당시 C&S사업단장을 부문장으로 전격적으로 발령 냈다. 이 부문장은 지난해까지 대외협력부문에 몸담으며 SK텔레콤의 굵직한 인수합병 및 사업권 획득 작업을 이끌어온 베테랑이다.

당황한 건 방통위였다. 통신업계 판도와 기업들의 속내를 제대로 읽지 못한 탓에 출혈 경쟁이 뻔한 ‘동시오름 입찰방식’을 밀어붙인 꼴이 됐기 때문이다. 실제 방통위에선 경매 첫날인 17일만 해도 “낙찰가는 기껏해야 6000억원 선이 될 것”이라며 느긋한 태도를 보였다. 하지만 입찰가가 7000억원을 넘어 8000억원으로 치닫자 크게 당황했다. 지방 국제회의에 참석 중이던 주무 국장이 해외 유력 인사들과의 약속을 취소한 뒤 급히 귀경하기도 했다. 이후에도 입찰가는 계속 치솟았고 국회는 물론 관련 업계, 언론의 비판은 커져만 갔다. 22일엔 국회에 출석한 최시중 방통위원장이 “경매 과열로 소비자 피해가 우려되는데 대책은 없는 거냐”는 여야 의원들의 질타에 진땀을 빼기도 했다.

◆SKT, ‘1조원 폭탄’ 되쏴 막판 뒤집기=1조원을 향해 달려가던 경매가가 주춤한 건 26일 오후 4시30분쯤이었다. 81회차 경매에서 SK텔레콤이 9950억원을 써내자 KT가 ‘입찰 유예’를 신청한 것. SK텔레콤과의 ‘1조원 폭탄 돌리기’에서 허를 찔린 탓이었다. 이전까지 두 회사는 회차마다 각기 30분의 시간을 들여 이전 최고 경매가보다 1% 높은 가격을 제시해 왔다. 그런데 26일 KT는 새로운 방법을 시도했다. 두 차례에 걸쳐 30분이 아닌 각기 10분, 5분 만에 새 입찰가를 써냈다. 경매 속도를 당겨 SK텔레콤이 다음 경매일인 29일 아침 첫 입찰에서 ‘1조원 벽’을 넘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경매가가 1조원을 돌파한다는 건 두 회사뿐 아니라 방통위에도 큰 부담이었다. 하지만 SK텔레콤도 순순히 말려들진 않았다. 관례를 깨고 81회차에 이전보다 1.75% 많은 입찰가를 써버린 것이다. 이에 따라 1조원을 돌파하는 짐은 KT에 넘어갔다. KT 고위 관계자는 “사실 큰 부담이었다. SK텔레콤이 물러설 가능성이 거의 없어 보이는 가운데 그 이상 경매를 끌고 가는 건 이득이 적다는 판단을 내렸다”고 전했다. 

이나리 기자

◆동시오름 입찰방식=1회 이상의 입찰 과정(라운드)을 거쳐 낙찰자를 정하는 경매방식. 두 기업 중 낮은 가격을 써 낸 기업이 다음 라운드에서 전 라운드 최고 입찰가보다 높은 가격으로 다시 입찰할 수 있다. 입찰 횟수를 미리 정하지 않기 때문에 어느 한쪽이 포기할 때까지 경매가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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