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노인 부양 사회적 부담 더 늘려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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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보건복지부가 자녀의 부양 능력을 판정하는 기준을 올린다고 한다. 지금은 4인 가구 기준으로 자식의 소득이 월 256만원이 넘으면 부모가 최저생계비 이하의 생활을 해도 국가가 보조하지 않는다. 자녀가 전적으로 부양을 책임져야 한다. 이 기준을 월 364만원으로 올리겠다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자식 때문에 보호를 받지 못하던 6만1000명의 노인들이 생계비·의료비 지원을 받게 된다.

 만시지탄이지만 환영할 만한 일이다. 사실 월 소득 256만원은 자식 가정만 쓰기에도 빠듯한 돈이다. 애들 학원 보내고 먹고 입는 데 쓰고 나면 남는 게 없다. 부모 봉양이 먼저라고 하면 할 말은 없지만 현실은 그리 녹록하지 않다. 기초수급자의 자녀 대부분은 생활에 여유가 없는 사람들이다. 그런 마당에 자식이 한 달에 257만원을 번다고 자식에게 부양을 전적으로 맡기면 자칫하다 자식 가정도 빈곤의 나락으로 빠질 수 있다. 빈곤의 대물림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뜻이다.

 그동안 이런 엄격한 규정 때문에 103만 명의 노인들이 국가의 보호를 받지 못했다. 최근 몇 년간 부양의무 기준을 완화해야 한다는 주장이 줄기차게 제기돼 왔지만 예산 부족을 이유로, 무상복지 논쟁에 가려 외면돼 왔다.

 최근 정부가 사회복지통합관리망을 활용해 부양의무자 240만 가구의 소득·재산을 샅샅이 뒤졌다. 그랬더니 4만 명이 수급자에서 탈락할 상황에 처했다. 탈락 통보를 받은 두 명의 노인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자식에게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해서다. 9월까지 탈락 예정자들의 소명을 받을 때 최대한 배려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그렇다고 부자 자식이 있는데도 정부 보조금을 탄 부정수급자는 엄격히 가려내야 한다. 경기도의 여교사와 남편은 근로·이자·임대소득으로 월 4085만원을 벌고 재산이 117억원인데도 부모가 기초수급자 보호를 받다 적발됐다. 교장 사위를 둔 장모, 월 소득 3000만원인 증권사 임원 아들을 둔 부모도 적발됐다. 그동안의 지원금을 철저히 환수해야 한다.

 이번 조치에는 예산이 2150억원(지방비 별도) 정도밖에 들어가지 않는다. 민주당의 무상의료·무상급식·무상보육, 한나라당과 민주당의 반값 등록금에는 수십조원이 든다. 차제에 너무 엄격한 재산 기준도 함께 완화해 극빈층 노인들을 더 구제해야 한다. 중소도시는 1억2836만원(대도시는 1억5286만원) 이상 재산이 있으면 부모가 보호를 받지 못한다. 재산을 소득으로 환산하는 비율도 절반 이하로 낮출 필요가 있다. 자식의 부양비용을 산정하는 비율(아들은 소득의 30%, 딸은 15%)도 너무 높다. 이런 기준을 낮추는 데 걸림돌은 생계비와 의료비를 둘 다 받거나 둘 다 못 받게 돼 있는 ‘세트 급여 체계’다. 이 둘을 분리해 생계비만 지급하면 재정 투입을 최소화할 수 있다. 미국·영국·스웨덴 등의 선진국은 자녀의 부양 능력을 따지지 않는다. 우리가 이들처럼 갈 수는 없지만 꼭 필요한 복지, 시급한 복지에는 인색하지 말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