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손이 독립운동 했어도 친일파 재산 국가 귀속”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16면

홍명희

아버지는 친일파였다. 그 아들과 손자는 독립운동을 했다. 그렇다면 이 친일파를 반민족행위자 범위에서 제외해야 할까.

 법원의 판단은 엄격했다. 청주지법 행정부(부장판사 최병준)는 14일 친일파 홍승목의 후손인 홍모(67)씨가 “충북 괴산군 괴산읍 제월리 156필지의 논밭과 임야 등 51만7000㎡를 국가에 귀속시킨 것은 불합리하다”며 법무부 장관을 상대로 낸 친일재산 국가귀속결정 취소 청구소송을 기각, 원고 패소 판결했다.

 재판부는 “홍승목은 1910년 한일강제병합 이후 조선총독부에서 일했고, 1918년 일제로부터 해당 부동산을 취득한 점에 대해서는 다툼이 없다”며 “친일반민족행위자 재산의 국가귀속에 관한 특별법이 정한 반민족행위자에 해당한다”고 판결했다. “아들과 손자가 독립운동을 한 만큼 홍승목을 반민족행위자에서 제외해야 한다”는 홍씨의 주장에 대해서도 재판부는 “후손이 독립운동을 했더라도 당사자가 독립운동을 하지 않았다면 반민족행위자에서 제외할 수 없다”고 판결했다. 특별법은 친일행위를 한 당사자가 후에 독립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했거나 일제로부터 받은 작위를 거부·반납했을 경우 반민족행위자에서 예외로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재판부는 “홍승목의 부동산은 러일전쟁 개전(1904년 2월) 때부터 1945년 8월 15일까지 친일행위 대가로 취득했기 때문에 모두 국가에 귀속시켜야 한다”고 덧붙였다.

  홍승목은 1910년 10월 조선총독부 중추원 참의(자문위원)로 임명돼 1921년까지 활동했다.

1909년 3월에는 제국실업회 회장을 맡아 일진회 합방 청원운동에 가담했다. 1914년에는 일본 군인 후원단체인 경성군인후원회에 기부금을 냈다. 이런 점을 일제로부터 인정받은 홍승목은 1918년 충북 괴산의 땅을 받았다.

 그러나 홍승목의 아들 홍범식은 금산군수로 재직하던 1910년 8월 29일 한일병합에 반대하며 자결했다. 홍승목의 손자인 소설 『임꺽정』의 작가 홍명희는 1913년 해외 독립단체인 동제사에서 활동했고, 1919년 3월 괴산에서 독립선언서를 만들어 만세시위를 주도했다. 후손인 홍씨 등은 이런 점을 들어 홍승목을 반민족행위자에서 예외로 해야 한다며 지난해 9월 청주지법에 소송을 제기했다.

 판결이 나오자 광복회 충북지회 서상국 사무국장은 “친일 행각으로 형성된 재산을 후손들이 되찾으려고 소송을 제기한 것 자체가 잘못”이라며 “법원의 판결을 환영한다”고 말했다.

홍씨는 “사유재산 침해다. 즉각 항소하겠다”고 말했다.

청주=신진호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