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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애니메이션 경쟁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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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최성국
‘북한 4·26 아동영화촬영소’
전 직원

북한에 있을 때 애니메이션용 원도(原圖)를 그렸다고 하면 의아해 하는 사람이 많다. 북한과 애니메이션은 잘 안 어울릴 것 같다는 것이다. 내가 몸 담았던 평양의 ‘4·26 아동영화촬영소’는 북한을 대표하는 애니메이션 회사다. 모두 11개의 창작팀이 있으며 직원은 약 1500명에 이른다. 두 개 팀만 국내 만화를 제작하고, 나머지 9개 팀은 외국에서 주문받은 애니메이션을 그린다. 주로 프랑스와 이탈리아가 발주한 것이다. 4·26 촬영소에서 그린 그림은 주문국으로 납품돼 대화·배경음악·음향작업을 거친 뒤 완성된다. 그래서 북한에선 이걸 합작만화라 부른다. 여기서 애니메이션으로 벌어들이는 외화는 연간 800만 달러 정도로 알고 있다. 4·26 촬영소는 해외에 ‘SEK’라는 이름으로 알려져 있다.

 그동안 SEK는 25~52부로 구성된 만화영화를 많이 만들었다. 대표적인 작품을 꼽으면 사자왕 심바(라이언킹), 포카혼타스, 왕후심청, 타이타닉호의 전설 등이다. 작품 수준은 발주한 나라의 요구에 맞춰야 하기 때문에 상당히 높다. 우리가 만든 작품이 해외 영화제에서 좋은 평가를 여러 번 받았다고 들었다. 4·26 촬영소는 ‘기량은 생명’이라는 구호를 내걸고 기량발표회도 자주 연다. 3D(3차원) 작품도 세계 수준으로 올리기 위해 애쓰고 있다. 본보기로 삼고 있는 곳은 미국의 월트디즈니사다. 그들의 작품을 항상 연구하며 기술을 연마한다.

 만화가는 평양 시내 중학교를 돌아다니며 감각 있고 손재주가 뛰어난 학생을 견습생으로 데려온다. 이후 3년간 현장에서 훈련과정을 거친다. 이 과정을 무사히 통과한 사람은 원도 미술가로 인정받는다. 외화벌이를 하지만 대우는 특별하지 않다. 하는 일만 다를 뿐 월급은 다른 직업과 비슷하다. 한 달에 본인 식량과 고기 1㎏, 설탕 1㎏, 식용유 1병을 받는다. 여기에 1달러에 해당하는 북한돈을 현금으로 받는다.

최성국 ‘북한 4·26 아동영화촬영소’ 전 직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