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수’주의자는 쾌락주의자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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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5호 10면

국수를 좋아하는 사람은 쾌락주의자다. 국수는 관능적이다. 보기에도 미끈한 면발. 후루룩 빨아들이면 입안 상피세포를 마구 두들기며 펴지는 탄성. 국수의 맛에는 말초적인 데가 있다. 나는 국수를 좋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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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 앞에 내가 가는 쌀국수집이 있다. 이 집 쌀국수는 국물이 꽤 맛있다. 시원하면 허전하기 쉽고 든든하면 느끼하기 십상인데 이곳 국물은 묵직하면서 개운하다. 나는 보름에 한 번 정도는 쌀국수로 점심을 먹는다. 단골이라 그런 것일까? 언제부터인가 내가 가면 썸머롤이나 닭튀김 같은 서비스가 종종 나온다. 나 말고 다른 손님에게도 주는가 싶어 유심히 봤는데, 아니다. 내게만 준다. 이게 무슨 일이지? 동료와 여럿이 갈 때뿐 아니라 가끔 혼자 식사하러 갈 때도 서비스를 챙겨준다. 일주일에 한 번 이상 찾는 단골도 꽤 많은데 왜 유독 내게만 서비스를 주는 걸까?

궁금한 것은 물어보면 된다. 그러나 나는 묻지 않는다. 그것은 국수를 좋아하는 사람의 방식이 아니다. 게다가 지금은 바야흐로 여름이 아닌가. 쾌락주의자는 추리물을 좋아한다. 이제 막 소설을 읽기 시작했는데 범인이 궁금하다고 마지막 장을 들춰볼 수는 없지 않은가. 쾌락은 과정을 즐기는 자의 것이다.

궁금한 것은 두 가지. ‘누가’ 그리고 ‘왜’ 서비스를 주는가다. 두 의문은 서로 연결되어 있어 하나가 풀리면 나머지도 쉽게 풀릴 것 같다. 나는 쌀국수집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한 명씩 살펴본다. 탐정의 눈으로 보면 다들 조금씩은 범인이다.

먼저 이십대 아르바이트생. 내가 고개를 숙이고 면을 빨아들이다가 눈길이 느껴져 고개를 들고 보면 활짝 웃으며 목례한다. 『1Q84』의 아오마메처럼 중년에게 마음을 빼앗기는 스타일일까. 그럴 리 만무하겠지만 만의 하나 그렇다 해도 아르바이트생에게는 서비스를 낼 권한이 없을 것이다. 제외.

다음은 삼십대 매니저. 나는 처음으로 서비스 받았을 때를 기억한다. 약간 어리둥절한 내가 두리번거릴 때 내 자리로 와서 “맛있게 드세요”라며 인사를 건넸던 사람. 그러고 보니 언젠가 네 사람이 앉는 자리에서 혼자 식사하고 있다가 매니저의 부탁으로 자리를 바꿔준 적이 있었다. 그게 감사하다고 거의 매번 서비스를 낸다? 글쎄, 그건 아무래도 상식적이지 않다. 억측이다. 제외.

마지막으로 사십대 점장. 이삼십대에게 나는 아저씨에 불과하겠지만 사십대 여성에게는 그나마 이성으로 보이지 않을까? 식사를 마치고 계산할 때 눈이 마주치면 점장은 어딘지 어색하고 수줍게 웃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면서도 인사말은 “예쁜 하루 보내세요”라며 콧소리까지 살짝 섞는다. 맞다. 이 가게 카운터 한 편에는 항상 중앙일보가 있다. 중앙SUNDAY도 구독하는지 모른다. 어쩌면 신문을 맨 뒤에서 읽는 버릇이 있는지도 모르고. 그래도 그렇지. 한두 번도 아니고 게다가 가끔은 내가 주문한 음식보다 더 비싼 서비스를 낸다는 것은 비현실적이다. 무엇보다 부근 직장에 다니는 사람은 명함을 제시하면 음식값을 10% 할인해주는데 매번 명함 제시를 요구하는 걸 보면 아예 나란 사람 자체를 모르는 게 분명하다. 제외.

아무리 생각해 봐도 이 쌀국수집에는 내게 서비스를 낼 사람도 이유도 없는 것 같다. 혹시 당신은 알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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