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셸론 문제로 유럽 국가들 반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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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과 미국이 극비의 통신 감청기구 에셸론(ECHELON) 문제로 유럽 동맹국들로부터 전례없는 법적.정치적 도전을 받고 있다고 영국의 텔레그라프지(지)가 13일 보도했다.

미국과 영국 등은 에셸론의 존재 자체를 극구 부인해 왔으나 지난주 비밀 해제된 미국 정부 문서는 세계적인 통신 감청 시스템이 실재하고 있음을 처음으로 공식 확인했다.

미국의 주도 아래 영어권 국가들이 공동 운영하고 있는 에셸론은 위성을 통해 전세계를 오가는 유선전화, 팩스, 전자우편, 무선통신을 도청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감청 네트워크는 공산권 블록과 치열한 첩보전이 진행됐던 냉전시대의 산물이지만 유럽국가들은 미국 정보당국이 에셸론을 이용, 요인들을 감시하고 산업기술을 빼돌려 자국 기업에 제공하는 수단으로 사용하고 있다고 비난하고 있다.

특히 영국은 유럽연합(EU) 회원국중에서는 유일하게 미국과 함께 에셸론 운영에 참여했다는 점에서 유럽 국가들로부터 격렬한 비난의 대상이 되고 있다.

영국은 지난 47년 미국과 함께 안보 정보를 공유하기 위한 에셸론 감청 시스템을 창설했고 이어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가 합류했다.

영국 노스 요크셔의 멘위드 힐 미군기지에는 첨단 도청 기능을 갖춘 거대한 골프공 모양의 레이더 돔 30여개가 있는데 영국의 협력 아래 세워진 이 시설은 전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도청 기지로 미국 메릴랜드주 포트 미드에 있는 미 국가안보국(NSA)과 직접 연결돼 있다.

이에 따라 유럽 의회의 지휘 아래 작성된 에셸론에 대한 새로운 보고서가 발표될 경우 영국의 역할과 관련된 논란이 더욱 가중될 전망이다.

새 보고서는 NSA가 산업정보를 도청 미국 업체들에 제공함으로써 대형 국제입찰에서 미국 기업들이 유럽 기업을 따돌린 대표적인 사례를 포함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법적 책임 문제까지 대두될 것으로 보인다.

정보 유출로 피해를 본 기업에는 에어버스 컨소시엄과 프랑스의 톰슨 CSF 등이포함돼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아시아의 경우에는 NSA의 첩보요원이었던 웨인 매드슨은 지난해 호주 TV와의 회견에서 미국의 거대 통신 사업자인 AT&T가 뉴질랜드 감청 기지에서 입수된 에셸론의 정보를 바탕으로 인도네시아 통신망 사업 입찰에서 일본의 NRC를 따돌렸다고 증언한바 있다.

텔레그라프지는 에셸론을 둘렀싼 이같은 의혹들이 사실로 밝혀질 경우 미국과 영국 두 나라는 동맹국들로부터 ''신뢰 상실''이라는 정치적 부담은 물론 엄청난 액수의 손해배상이라는 법적인 부담을 지게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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