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아직도 민 위에 군림하는 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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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이 정부가 하는 일을 가만히 뜯어보면 과거에 봐왔던 것들이 많다. 물가정책이 특히 그렇다. 이명박 대통령은 3년 전 취임 직후 서민생활과 밀접한 품목을 특별 관리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52개 품목으로 구성된 소위 ‘MB 물가지수’가 탄생한 배경이다. 그 뒤 52개 물가를 잡는다며 소리는 요란했지만 효과는 없었다. 지난 3년간 소비자물가지수는 11.75% 올랐으나 MB 물가지수는 20% 이상 뛰었던 것이다.

 올 초 “기름값이 묘하다”는 대통령의 언급으로 시작된 정유사 팔 비틀기도 유사한 사례다. 부처 합동팀이 급조돼 석 달간 샅샅이 뒤졌으나 별 탈법(脫法)은 찾아내지 못했다. 그 와중에 민간 석유협회장만 애꿎게 목이 달아났다. 오강현 협회장은 2월 21일 기자간담회에서 정유업계에 대한 정부의 집요한 가격 인하 압력에 대한 입장을 밝혔다. 그는 “국내 기름값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보다 비싸다는 건 사실이 아니다”고 말했다. 며칠 전 전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의 발언을 반박한 것이다. 당시 윤 장관이 언급한 기름은 국내 시장에서 매출이 1%에 불과한 고급 휘발유였다. 대표성이 없는 예를 들어 정유사를 압박하자 한마디한 것이다. 오 회장은 최중경 지식경제부 장관이 “정유사 영업이익이 적지 않다”고 지적한 것에 대해서도 “동의할 수 없다”고 받아쳤다. “영업이익률이 18.8%인 포스코와 12.7%인 삼성전자는 박수를 받는다”며 “정유사 영업이익률은 3%에 불과하고, 그나마 영업이익의 70%는 수출로 벌어들인다”고 말했다.

 다음날 석유협회는 총회를 열고 그의 연임을 확정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갑자기 총회 일정이 취소됐다. 오 회장의 발언이 언론에 크게 보도되자 최중경 장관이 몹시 역정을 냈기 때문이다. 지경부 담당 간부는 협회에 장관의 심기와 더불어 오 회장 연임 불가 방침을 전했다. 2년 임기의 석유협회장을 뽑는 건 100% 4대 회원사(SK에너지·GS칼텍스·현대오일뱅크·에쓰오일) 몫이다. 민(民) 위에 군림하는 관(官)의 위세, 과거에도 지겹게 봐 왔는데 아직도 더 봐야 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