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할아버지께서 우리한테 고맙대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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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일 위스타트 구리마을 공부방의 파랑새 봉사단 어린이들이 인근 서가산 경로당을 방문해 직접 만든 화전을 갖다 드리고 어르신들 어깨를 주물러 드리고 있다. [최명헌 기자]

“저도 꽃 놔 주세요.” “제가 만든 건 여기에 구울래요.” 지난 19일 오후 경기도 구리시의 위스타트 센터 공부방. 쉴 새 없이 떠드는 아이들 목소리와 ‘지글지글’ 화전 굽는 냄새로 한가득이다. 공부방 아이들로 구성된 ‘파랑새 봉사단’이 인근 서가산 경로당 어르신들에게 갖다드릴 화전을 만드는 중이다. 책상에는 책 대신 진달래 꽃과 쑥, 찹쌀 반죽 등이 널려 있었다. 아이들의 봉사 계획을 들은 구리시 동구로터리 클럽 영부인회 소속 자원봉사자들이 “우리도 돕겠다”며 준비해준 재료들이다. 서툰 손으로 화전을 만들겠다고 나선 아이들은 그저 신이 났다.

그 중에서도 민주(여·부양초 4학년·가명)가 제일 싱글벙글이다. 구석구석을 누비며 친구들과 선생님들이 마실 물을 열심히 날라다 준다. “지난번에는 경로당에 다식이랑 수정과를 만들어 갖다 드리고 공연도 했는데 정말 뿌듯했거든요.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저한테 고맙다고 하셨다니까요.” 민주가 으쓱해할 만도 하다. 그때 핸드벨 연주를 하기 위해 정말 열심히 연습했기 때문이다.

민주가 이렇게 환한 웃음을 되찾은 건 위스타트센터에 오면서부터다. 엄마 없이 일용직을 하는 아빠하고 여관방을 전전하며 살던 민주는 3년 전 이곳에 처음 왔다. 그때만 해도 혼잣말을 많이 하고, 무슨 일을 하든 두려워 했다고 한다. 김에스더(41·여) 구리마을 공부방 팀장은 “우유 한 잔 마시는 데도 세 시간이 걸렸어요. 할 줄 아는 건 웃고 우는 거밖에 없었죠”라고 기억을 떠올렸다. 공부방 교사들은 민주에게 한글과 수학을 차근차근 가르쳐주고, 식사와 학교생활도 챙겨줬다. 센터에 매주 한번씩 오는 자원봉사자들은 미술이나 종이접기도 지도해줬다. 1년도 채 못돼 민주는 눈에 띄게 달라졌다. 다른 아이들의 준비물을 챙겨주고 도와주기도 했다. 특히 미술에 소질을 보여, 얼마 전에는 학교 교내 행사에서 금상을 타왔다. 민주도 “화가가 되는 게 꿈”이라고 말한다.

김 팀장은 “아이들 한 명 한 명 상황에 맞춰 사례관리를 하는 위스타트 운영 방법이 아이들 변화에 큰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2007년 문을 연 구리마을 센터공부방에는 현재 저소득 가정이나 다문화 가정의 초등학생 아동 44명이 있다. 아이들은 방과후 공부방에 와서 오후 6시까지 학과 공부나 미술 활동 등을 한다. 공부방 교사들은 인근 초등학교 복지교사들과 연락하며 아이들의 학교 생활도 꼼꼼히 체크한다.

봉사활동은 아이들의 변화를 이끄는 또 다른 비결이다. 주로 자원봉사자들의 도움을 받으며 생활하는 아이들은 한 달에 한 두번씩 직접 봉사활동을 해봄으로써 자긍심을 기르고 나눔을 배운다. 구리마을 공부방의 경우 현재 3~6학년생 자원자 19명이 파랑새 봉사단 활동을 하고 있다.

오후 5시, 드디어 화전이 다 준비됐다. 민주를 비롯한 파랑새 봉사단 아이들은 화전과 식혜 상자를 양손 가득 들고 나란히 줄을 서서 경로당으로 향했다. 아이들의 등장에 경로당이 금세 시끌벅적 해졌다. 선생님의 ‘하나 둘 셋’ 구호에 맞춰 아이들이 합창하듯 “할머니 할아버지 맛있게 드세요”를 외쳤다. 어르신들이 화전을 손에 들자 아이들이 뛰어가 안마를 해드렸다. 여기저기서 “고만해 이제, 손 아프잖니”, “아니 아니, 괜찮아요”하는 실랑이가 벌어졌다. 김옥수(93) 할머니는 “너무 고마운데 우리가 보답할게 없어서 어쩌누 …”하며 아이들을 쓰다듬었다. 이날 아이들은 경로당 주변 청소도 했다. 민주는 “친구들이나 할아버지 할머니를 도와드리고 나면 기분이 좋아진다”며 “많은 사람들 도와줘서 항상 칭찬 받는 어린이가 되고 싶다”라고 말했다.

구리=윤새별 행복동행 기자
사진=최명헌 기자

파랑새 봉사단=전국 24개 위스타트 센터의 서비스 대상 아동들이 만든 봉사단. 아이들이 자신의 어려움에만 갇혀 지내지 않고 주변의 어려움을 돌아보도록 함으로써 공동체 의식과 자긍심을 기를 수 있게 해준다. 이번 자원봉사대축제에도 여러 지역센터의 파랑새 봉사단이 참여하고 있다. 경기도 수원마을 봉사단은 23일 환경정화를 위해 수원천 주변을 청소했고, 서울시 강서마을 봉사단은 23일부터 일주일에 걸쳐 지역 어르신들을 찾아다니며 발 마사지를 해드리고 직접 만든 천연 비누를 전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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