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곡절 끝에 제자리 찾은 한국사 필수과목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0면

마침내 고사(枯死) 위기에 처했던 한국사 교육이 제자리를 잡았다. 역사교육과정개발추진위원회가 22일 “한국사 과목을 내년부터 고등학교 필수과목으로 한다”고 발표했다. 2009년 교육과정 개편으로 ‘선택과목’이 되었던 한국사가 다시 필수과목으로 전환된 것이다. 한국사가 선택과목이 되면서 사실상 역사교육을 포기했던 안타까운 현실이 비로소 바로잡힌 것이다.

 본지는 올 초 신년기획 어젠다로 한국사 교육 문제를 제기했다. ‘한국사, 필수과목으로 하자’라는 기획취재를 통해 역사교육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대안을 제시했다. 글로벌 시대에 역사교육이 더 중요하다고 주장했다. 중국의 동북공정과 일본의 교과서 왜곡 와중에 자국(自國) 역사 가르치기를 포기한 우리 교육당국의 무감각을 개탄했다.

 일반 국민의 여론과 학계의 주장도 같았다. 국민의 91.2%가 ‘필수’를 지지했으며, 저명한 역사학자들이 본지 기획 취지를 알리는 ‘홍보대사’를 자임했다. 정부도 움직이기 시작했다. 대통령이 ‘공무원시험에 역사 과목을 반영하는 방안 검토’를 지시했다. 역사교육을 재검토하는 역사교육과정개발추진위원회가 출범했다. 그 위원회의 활동 결과가 22일 ‘필수과목으로 환원’ 결정이다. 대통령의 역사관이 작용했다.

 역사교육 바로잡기는 지금부터 시작이다. 필수로의 환원은 그 출발점이다. 중요한 것은 이번 결정이 실질적인 효과를 거둘 수 있도록 담보하는 후속조치들이다. 첫 번째 과제는 역사교육의 콘텐트 바로잡기다. 제대로 된 내용을 가르쳐야 한다. 역사교육은 단순한 지식 나눔이 아니다. 국가적으로는 공동체의 영혼을 불어넣는 일이며, 개인적으론 세상을 보는 눈을 길러주는 소양교육이다. 아직도 역사교과서 일부엔 좌(左) 편향 서술과 자학적(自虐的) 사관(史觀)이 남아 있다. 균형 잡힌 역사관을 담은, 우리 현대사에 대한 자긍심을 불어넣는 교과서를 만들어야 한다. 민주화와 산업화의 성취와 고뇌를 담아야 한다.

 두 번째 과제는 학생들이 진정 역사 공부의 필요성을 느끼게 만들어야 한다는 점이다. 아무리 필수로 지정해도 학생들이 건성건성 시간만 때우는 식이 되면 역(逆)효과다. 그러자면 한국사 과목이 학생들에게 실질적으로 필요해야 한다. 역사 공부가 고등학교 교실에서 끝나지 않고, 대학 진학과 취업까지 연결되어야 한다. 각 대학이 한국사 내신성적을 입시에 반영하도록 권장할 수 있다. 궁극적으로 각종 공무원 시험 등 취업 과정에 한국사 과목을 넣는 것이 필요하다.

 마지막으로 한국사 수업시간이 재미있어야 한다. 학생들이 국사를 기피하는 이유 중 하나는 ‘주입식’ ‘암기식’이라 재미가 없다는 것이다. 우리의 역사는 현재 우리의 삶으로 이어져 살아 숨쉬는 얘기다. 살아있는 역사현장을 적극 활용해야 한다. 죽은 역사가 아니라 오늘의 역사를 가르쳐야 한다.

 정부는 어렵사리 제자리로 돌아온 역사교육이 다시는 탈선(脫線)이나 역행(逆行)하지 않도록 후속조치에 만전을 기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