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렁이는 색으로 칠한 불확실한 세상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6면

권현진

연작의 제목은 ‘시각적인 시(visual poetry)’다. 눈으로 읽고, 눈으로 쓴 시다. 실제 화폭도 시적이다. 일렁이는 여러 색이 중첩되고 섞이면서 무정형의 리듬감을 만들어낸다. 신예 권현진(31) 작가가 26일까지 서울 경운동 그림손 갤러리에서 개인전을 갖는다. 국내 두 번째 개인전이다. 뉴욕·도쿄 등 해외 개인전도 5번 열었다.

 얼핏 보면 부드럽게 펼쳐진 바닷가 모래언덕 풍경이나 물결의 흔적 같기도 하지만 그의 그림에서 어떤 형체를 찾는 것은 무의미하다. 미술평론가 김종근 역시 “구체적인 메시지나 암시는 없다. 연상되는 어떤 것도 없다. 그러나 그는 불확실한 것을 통해 본질을 표출하고 싶어하는 열망을 가지고 있다”고 했다. 팝아트·극사실화의 강세 속에 추상회화의 전통을 충실히 따르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권씨는 “내게는 색이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다. 색이 생각을 변화시키고 행동을 바꾸고 반응을 일으키고 (관객과) 소통을 하게 한다. 나의 혼란스러운 정체성, 내면의 불확실성 등을 추상적 형태로 담아냈다는 뜻에서 ‘시각적인 시’란 제목을 붙였다”고 말했다. 그는 우레탄에 칼라 잉크를 섞은 뒤 캔버스에 뿌리거나, 붓칠하거나, 밀거나 흘리며 작품을 완성한다. 쌓아 올린 색과 반짝이는 화면이 색다른 맛을 자아낸다.

 권씨는 5분짜리 미디어 아트도 선보인다. “평면의 추상회화가 아닌 움직이는 추상회화를 선보이고 싶었다”고 했다. 물감이 떨어지고 색깔이 뭉치는 장면을 촬영한 뒤 그 배경으로 이번 전시의 신작을 겹쳐놓았다. 권씨는 이화여대 서양화과, 미국 프랫 인스티튜트(석사), 연세대 커뮤니케이션대학원(미디어아트·석사)을 마쳤다. 02-733-1045.

양성희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