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우 인민은행장의 두통 … “중국 외환보유액 합리적 수준 넘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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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미국의 신용전망이 강등된 18일 중국은 막대한 외환보유액 때문에 고민이라고 털어놨다. 누군가에 의해 연출되지 않은 우연의 일치다. 무관한 두 사건이 어우러지면 글로벌 금융·자원 시장에 거대한 용틀임이 일 듯하다 저우샤오촨(周小川·64) 중국 인민은행장은 18일 칭화(淸華)대에서 열린 금융포럼에서 “외환보유액이 중국이 필요로 하는 합리적 수준을 이미 넘었다”고 말했다. 그는 “외환보유액이 과도하게 쌓이다 보니 시장에 유동성이 지나치게 넘쳐난다”고 진단했다. 이어 “이 때문에 인민은행의 외환 리스크 관리에 압력이 가중되고 있다”고 토로했다.

저우 행장이 중국의 외환보유액이 과도하다는 사실을 직설적으로 언급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외환보유액이 너무 많아 환리스크 관리가 어렵고 유동성 관리에도 부담을 준다는 말은 중앙은행 수장의 고충을 숨김없이 드러낸 이례적 언급이다. 실제 중국의 외환보유액은 최근 몇 년간 가공할 속도로 불어났다. 3월 말 기준으로 중국의 외환보유액은 3조447억 달러로 3조 달러를 넘어섰다.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4.4% 증가한 사상 최고치다. 중국의 외환보유액은 1996년 11월 처음 1000억 달러를 넘었으며, 2006년 10월 1조 달러를 돌파했다. 2009년 6월 2조 달러를 넘었고 다시 불과 1년6개월 만에 3조 달러로 불어났다. 중국은 2006년 2월 일본을 제치고 세계 최대 외환보유 국가로 도약해 줄곧 그 지위를 유지하고 있다. <그래픽 참조>

저우샤오촨(周小川) 중국 인민은행장이 18일 “중국의 외환보유액이 과도하게 많다”고 밝혔다. 그 부작용을 해소하기 위해 막대한 중국 자금이 세계 금융과 원자재 시장으로 이동할 것으로 예상되면서 후폭풍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중국의 외환보유액은 지난달 말 3조 달러를 돌파했다. [블룸버그]<사진크게보기>


 이날 미 신용평가회사인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는 미국 신용전망을 ‘안정적’에서 ‘부정적’으로 낮췄다. 중국이 외환보유액을 동원해 1조1600억 달러 이상을 사들여 놓은 미 채권의 신뢰도가 부정적이란 얘기다. 저우샤오촨의 고충을 더욱 키워주는 사건이 같은 날 태평양 건너에서 벌어진 셈이다.

 세계 금융 플레이어들에겐 자산구조를 다변화하는 일이 더욱 급해졌다. 중국의 외환보유액은 금융위기 같은 일을 대비한 ‘외화 저수지’다. 하지만 위기가 사실상 지나간 지금에 와선 애물단지나 다름없다. 채무국인 미국이 양적 완화 등으로 달러를 학대(가치 떨어뜨리기)하면 중국으로선 속수무책이다. “국무원(중앙정부)이 최근 과도한 외환보유액을 줄이라고 인민은행에 주문한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라고 신경보는 전했다. 보유 외환의 다각화를 주문했다는 의미다. 따라서 중국이 앞으로 3조 달러를 미 국채 이외의 자산에 베팅할 가능성이 크다.

 가장 유력한 후보가 자원과 신기술이다. 중국은 더욱 공세적으로 광산이나 유전, 자원개발회사 등을 사들일 듯하다. 또 첨단 정보기술(IT)과 생명공학기술(BT)을 보유한 기업을 더욱 공세적으로 인수합병(M&A)할 전망이다.

 한국도 남의 일이 아니다. 이미 ‘왕서방’ 머니의 움직임은 감지됐다. 중국은 세계 4위의 한국 채권 보유 국가다. 지난달 말 현재 중국이 보유한 한국 국채 규모는 7조6308억원이다. 최근의 추세대로 국채를 사들인다면 연말에는 최대 보유국이 될 것이란 전망도 있다. ‘왕서방’이 국내 채권시장의 큰손으로 떠오르면서 국내 금리 정책이 먹히지 않는다는 볼멘소리도 나오고 있다. 주식시장에도 중국 자금의 유입이 본격화하고 있다. 외국인이 2조원가량의 주식을 내다판 1분기에도 중국계 자본은 7184억원의 주식을 사들이며 미국에 이어 두 번째 큰손 자리에 올랐다. 게다가 중국 국유투자회사는 물론 민간 기업들의 해외 투자도 급증할 것으로 예상된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 중국사무소 양평섭 수석대표는 “중국이 외환 보유의 다각화를 적극 추진하면 국제 금융시장에 영향을 줄 수 있다”며 “또 자원에 대한 전략적 투자가 늘어날 공산이 크기 때문에 국제 원자재 시장 가격 변동에 대한 추가 대비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베이징=장세정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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