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신용등급 하락 … 흔들리는 미국 리더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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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신용평가 회사인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가 미국의 국가 신용등급 전망을 ‘안정적(stable)’에서 ‘부정적(negative)’으로 내렸다. 일정 기간 안에 재정 상태가 개선되지 않으면 신용등급을 하락시키겠다고 경고한 것이다. S&P는 “금융위기 이후 2년이 지났는데 미국의 막대한 재정적자와 정부 부채가 해결될 전망이 밝지 않다”고 주장했다. 현재 AAA인 미국의 신용등급이 추락하면 이자율은 상승하고 미 국채도 시장에서 제대로 소화되기 어렵다. 미국은 물론 세계경제에 치명타를 입힐 수 있는 예민한 사안이다.

 미국은 금융위기에 대처하느라 대증요법(對症療法)에 매달려 왔다. 기준 금리를 낮추고 막대한 재정을 풀었다. 다행히 대공황은 피했지만 그 후유증이 심각하다. 올해 미 재정적자는 1조5000억 달러를 웃돌고, 정부 부채는 조만간 14조3000억 달러로 책정된 상한선마저 뚫을 기세다. 초(超)저금리와 양적 완화에 따른 부작용도 만만찮다. 달러 약세는 글로벌 인플레이션을 불렀고, 넘치는 달러화는 이머징마켓으로 몰려가 거품을 부풀리는 중이다. S&P는 한마디로 불건전한 미 경제체질에 경종(警鐘)을 울린 것이다.

 미국의 재정 문제가 순조롭게 풀릴지는 의문이다. 아직 경기회복이 불투명한 마당에 증세(增稅)는 엄두를 내기 어렵다. 유일한 해결책인 재정 지출 삭감은 정치적 진통에 휩싸였다. 미 공화당은 재정 건전성을 위해 과감한 삭감을 요구하는 반면 민주당은 지나친 삭감이 복지 지출 감소로 서민들의 어려움을 가중시킨다며 반대하고 있다. 미국 정치권이 합의를 보지 못하면 이런 ‘미국병(病)’을 도려낼 수 없다. 팽팽한 정치적 대치 상태가 이어지면 언제 남(南)유럽과 같은 재정위기가 발생하지 않으리란 보장도 없다.

 미국은 그동안 기축통화국의 지위를 한껏 누렸다. 막대한 부채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국채는 가장 안전한 자산으로 여겨졌다. 이런 타성 때문에 미 정부는 S&P의 경고를 과소평가하는 분위기다. 오스탄 굴스비 백악관 경제자문위원장은 “S&P는 정치적 판단을 했으며 백악관은 이런 결정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비난했다. 하지만 ‘저금리-재정 확대’의 당의정(糖衣錠)만 계속 복용하면 경제체질이 나빠질 뿐이다. 재정 건전성을 도모하려면 예산 지출 삭감이란 고통을 이겨 내야 한다. 경기가 정상궤도에 오르는 대로 기준 금리를 정상 수준으로 되돌리는 출구전략도 필요하다.

 미국은 S&P의 경고를 무겁게 받아들여야 한다. 언제까지 기축통화국 지위에 안주할 수 없는 노릇이다. 미 국채가 항상 팔릴 것이라는 환상에 빠져서도 안 된다. 이미 중국을 비롯한 아시아의 중앙은행들은 보유 중인 미 국채와 달러화에 불안감을 느끼고 있다. 미국의 신용등급이 하락하면 언제든지 미 국채와 달러화를 팔아 치울 수 있다는 뜻이다. 아시아 중앙은행들이 자선단체가 아닌 이상 이런 손절매(損切賣)의 가능성은 항상 열려 있다. 미국도 파국을 막으려면 S&P의 경고를 자명종 삼아 정신을 차려야 한다. 역사적으로 패권국가들은 어김없이 경제적 토대가 손상되면서 몰락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