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훈범의 세상사 편력] 룰은 지켜져야 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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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훈범
중앙일보 j에디터

예능 프로그램 하나가 나라를 뜨겁게 달궜었습니다. 결국 야심찬 출사표를 던졌던 PD가 출발하자마자 차에서 내려야 했고, ‘나는 가수다’라는 도도한 이름의 버스는 차고지로 돌아가 한 달 동안이나 수리를 받게 됐습니다.

 TV 프로그램 하나에 이렇게 많은 사람이 흥분하다니…. 이상하지 않나요? 물론 참으로 매력적인 프로그램입니다. 다른 건 다 뛰어난데 노래만 못하는 가수들이 차고 넘치는 세상에서, 진짜 가수들끼리 진짜 실력을 겨룬다는 데 흥분 안 할 수 없지요. 사실 전 승부는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보다 노래 잘하는 가수의 좋은 노래(대체로 따라 부르기 어렵지요)를 노래 잘하는 다른 가수가 다른 창법과 다른 음색으로 부르는 걸(더 낫기도 하더라고요) 듣는다는 게 짜릿했지요. 그래서 첫 번째 정거장에서 내리게 된 가수에게 한 번의 탑승 기회가 더 주어졌을 때, ‘이건 아니지’ 싶으면서도 PD의 결정을 받아들일 수 있었습니다. 노래 잘하는 가수의 다른 노래를 들을 수 있게 됐으니까요.

 그런데 다른 많은 사람은 그렇지가 않았나 봅니다. 여기저기서 거품 무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관심이 컸던 만큼 실망도 컸던 겁니다. 참으로 생각해 볼 주제였습니다. 어째서 노래 잘하는 가수에게 한 번 더 기회를 주는 걸 사람들이 용납하지 못하는 걸까요. 콩쿠르도 아니고, 그저 오락 프로그램일 뿐인데도 말이죠.

 그것은 ‘룰 브레이커(rule breaker)’에 대한 환멸에 기인한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이 땅에서 앞서 나가는 많은 인사가 뒤에서는 얼마나 자주, 많이, 상습적으로 룰을 어겨왔던가를 자주, 많이, 상습적으로 목격해 온 사람들의 트라우마가 또 한번 자극받은 거지요. 땅을 사면서, 금융 거래를 하면서, 세금을 내면서, 아이 학교를 옮기면서, 논문을 쓰면서, 살면서 득 되는 선택이라면 주저없이 룰을 깨뜨려 온 사람들이 도덕적으로 살아온 사람들만이 가져야 하는 공직까지 탐내며 ‘잘못했다’ ‘죄송하다’고 고개 숙이는 ‘재수 없는’ 장면이 또다시 떠오른 거란 말입니다. 잊혔던 분노가 다시 터져나올 수밖에요.

 분노한 만큼 명심하십시오. 룰은 지켜져야 한다는 걸 말입니다. 여기서 떠오르는 대목이 있습니다. 중국의 전국시대 정치가 상앙(商鞅) 아시지요. 진(秦) 효공 밑에서 10년간 재상을 지내며 엄격한 법치주의 정치를 펴 진 제국의 기반을 다진 인물입니다. 어느 날 새로 시행된 법을 태자가 위반했습니다. 이에 상앙은 “법이 널리 효과를 거두지 못하는 것은 위에서부터 이를 어기기 때문”이라며 태자의 처벌을 주장했습니다. 하지만 태자는 왕위를 계승할 사람 아닙니까. 형벌을 줄 수가 없지요. 상앙은 대신 태자의 스승인 태부 공자 건을 벌하고, 태사 공손고는 얼굴에 죄명을 새겨넣는 묵형에 처했습니다.

 물론 상앙의 신법은 지나치게 가혹한 측면이 있었습니다. 본인도 자신이 만든 법의 희생자가 됐지요. 하지만 지키기 어려운 것과 지키지 않는 것은 다릅니다. 지키기 어렵다면 고쳐야 하고, 그렇지 않으면 지켜야 하는 겁니다. 그래야 사회가 제대로 돌아갈 수가 있겠지요. 사마천은 『사기』 ‘상군열전’에 이렇게 썼습니다.

 “법령이 시행된 지 10년이 되자 진나라 백성들은 매우 만족했다. 길에 떨어진 물건이 있어도 줍지 않았고, 산에 도적떼가 사라졌으며 집집마다 풍족하고 살림은 넉넉했다. 백성들은 전쟁에 나가서는 용감했지만 사사로운 다툼은 피했다. 진나라는 도시와 농촌이 고루 잘 다스려졌다.”

 동양만 그런 게 아닙니다. 중세까지 서양은 치안이 확립되지 않아 도시만 벗어나면 무법천지나 다름없었습니다. 도적떼가 들끓어 여행은 목숨을 걸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혼자 여행을 시키는 형벌까지 있을 정도였지요. 그런데 정복왕 윌리엄은 영국에 노르만 왕조를 연 뒤, 중앙집권적 봉건제를 확립하고 엄격하게 법을 집행해 정의를 실현했습니다. 사형제도까지 폐지했지만 1087년 그가 승하할 당시에는 “금덩이를 품고 왕국 어디를 돌아다녀도 별일을 당하지 않을 것”이라는 말이 나올 만큼 평온한 사회가 됐습니다.

 다시 말하지만 룰은 지켜져야 합니다. 파울을 하는 선수가 있다고 해서 모두 따라 한다면 축구경기는 성립할 수 없습니다. TV 프로그램도, 사회도 마찬가집니다. 룰을 깨는 사람이 있다고 해서 모두 그를 따른다면 존재할 수가 없지요. 내가 먼저 지키는 겁니다. 사회와 국가를 지키는 건 기본이고, 룰을 깨는 사람을 시원하게 욕할 수 있는 명분과 즐거움이 덤으로 따를 게 아닙니까.

이훈범 중앙일보 j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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