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협박하는 교회, 무릎 꿇는 정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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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이회창 자유선진당 대표가 23일 “교회는 정치를 협박하지 말라”고 말했다. 이슬람채권(수쿠크)법을 막고자 정치권에 압박을 가해온 개신교계를 향해 던진 경고다. 올바른 소리며 용기 있는 자세다.

 이슬람채권법은 중동의 오일머니를 유치하기 위한 법안이다. 사실상 오일머니 유치를 막아온 관련법을 개정함으로써 해외자금 조달을 다양화하자는 취지다. 그 필요성에도 불구하고 개신교계의 노골적인 반대로 이번 임시국회에서도 입법이 어려워졌다. 야당인 민주당이 반대하는 가운데 여당마저 법개정을 포기했다.

 이회창 대표의 지적은 두 가지 측면에서 옳다. 첫째, 종교계가 정치권에 압력을 행사해선 안 된다는 점이다. 정치와 종교의 분리는 현대국가의 기본원리다. 보수 개신교계의 대표격인 한국기독교총연합회 회장이 공개적으로 법 개정을 반대하면서 낙선운동까지 시사한 것은 정교분리에 정면으로 위배된다.

 더욱이 개신교계가 반대하는 논리도 객관적으로 타당하지 못하다. 법 개정은 이슬람에 특권을 주자는 것이 아니다. 경제 성장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해외 자금을 유치하자는 취지다.

 둘째, 종교계의 압력에 굴복하는 정치권 역시 비난받아 마땅하다는 점이다. 정치권은 특정 종교세력이 아니라 국익을 위해 법을 만들어야 한다. 법안에 반대하는 사람의 주장이 옳지 않으면 설득에 최선을 다한 다음 소신껏 입법을 추진해야 한다. 특히 개신교계의 부정확한 주장을 대변해온 일부 기독교도 국회의원의 행태는 공인으로서의 본분을 잊은 것으로 비판받아 마땅하다.

 임시국회는 3월로 이어진다. 정치권은 지금이라도 법 개정을 재추진해야 한다. 개신교계는 객관적인 시각에서 법 개정의 필요성을 다시 따져봐야 한다. 대한민국 헌법 20조(국교는 인정되지 아니하며, 종교와 정치는 분리된다)를 잊어선 안 된다. 경제문제는 경제논리로 풀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