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세금 낭비 스톱!] 재앙 될 뻔한 경전철 … 고양 시민은 막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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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일 오후 일산 호수공원에서 만난 고양시민 노용환(42·일산서구 주엽동·사진)씨는 가슴을 쓸어내렸다. “달려도 멈춰도 한 해 수백억원의 적자가 생기는 용인 경전철을 보면서 고양시는 다행이었다고 생각이 드네요. 그때 시민들이 감시를 하지 않았다면 저희도 매년 수백억원씩 밑 빠진 독에 세금을 쏟아 부을 뻔했거든요.”

 그는 2년6개월 전인 2008년 7월부터 5개월간 ‘고양 경전철 반대 주민대책위’ 결성을 주도하고 정책실장을 맡았다. 주민들은 서명운동, 반대집회, 건의서 제출, 지자체 항의방문 같은 방법으로 시민운동을 펼쳤다. 이 결과 같은 해 12월 말 고양시는 경전철 추진을 전면 중단했다.

 고양 경전철(모노레일)은 2003년 9월 일산신도시 순환철도망 구축 차원에서 추진했다. 시는 2006년 4월 한국교통연구원에 경전철 기본계획 용역을 의뢰했다. 용역 결과에 따라 2008년 7월 시는 이 사업을 민간 투자 대상사업으로 선정하고 국·도·시비(50%)와 민자(50%) 등 5115억원을 들여 조성키로 했다. 대화∼식사지구 11.9㎞ 구간에 1단계 사업을 마친 뒤 대화∼중산지구 5.2㎞(2단계), 중산∼식사지구 4㎞(3단계) 등 순환노선을 올해부터 2014년까지 구축한다는 계획이었다. 당시 고양시는 수요 예측 조사를 통해 하루 10만4000여 명이 경전철을 이용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2008년 8월 경기도 고양시 마두역 광장에서 경전철 반대 주민대책위원회 회원들이 경전철 반대집회를 하는 모습. 이들은 당시 고양시가 제시한 경전철 건설계획이 예산 낭비와 환경 파괴 우려가 크다며 반대했다.

 주민들의 반발은 여기서 터져 나왔다. 노씨는 “당시 지하철 3호선 이용자 수를 기준으로 시뮬레이션한 결과 하루 이용객이 1만 명 이하일 것으로 조사됐다”고 말했다. 서울 도심과 이어지는 일산신도시 지하철 3호선 주요 역사의 이용객보다 많은 인원이 고양시 관내를 통행하기 위해 경전철을 탄다는 수요 예측 조사는 엉터리라고 지적했다. 이런 조건에서 경전철이 개통되면 연간 수백억원의 적자가 발생할 게 뻔했다.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조직을 꾸렸다. 일부 찬성하는 주민도 있었지만 많은 주민이 반대의 목소리를 냈다. 40개 아파트단지 2만여 가구 주민은 경전철 반대 주민 대책위원회를 구성했다. 고양시의 계획을 주민들이 다시 따져 보니 환경 훼손과 소음, 조망권 침해 같은 문제점도 드러났다. 게다가 찬성, 반대 주민 간에 갈등의 골도 생겼다.

 그래도 엄청난 세금 낭비가 뻔한 사업을 그대로 둘 수는 없었다. 주민들은 서명운동을 벌이고 시청 항의방문, 건의서 제출 등을 했다. ‘적자 뻔한 경전철, 시민에겐 고통철’ ‘세금 낭비 경전철 결사반대’ 등의 팻말을 들고 대규모 반대집회도 열어 시민들의 열기를 모았다.

 이런 반대운동이 집요하게 전개되자 분위기가 바뀌었다. 총사업비 가운데 도비 지원이 불투명해졌다.

도가 발을 빼면서 시의 부담이 2011억원에 이를 것으로 예상됐다. 여기에 수요 예측이 부풀려져 경제성 분석이 의문시된다는 지적이 시 내부에서도 나왔다. 고양시는 결국 2008년 12월 23일 경전철사업 전면 재검토를 선언했다.

 “엄청난 세금 낭비가 불가피한 용인 경전철과의 차이는 간단합니다. 고양시민들은 자신들이 낸 세금이 어떻게 쓰이는지 감시에 철저했다는 점입니다.”

 노씨는 “내가 낸 세금이 어떻게 쓰이는지 관심을 갖는 자세가 시의 재정을 살찌우는 길”이라고 말했다.

고양=전익진 기자

고양 경전철사업 막기까지

2003년 9월  일산신도시 순환철도망 구축 차원에서 경전철 사업 추진

2006년 4월  고양시, 한국교통연구원에 경전철 기본계획 용역 의뢰

2008년 1월  경전철 노선보고회(고양시장실)

2008년 7월  고양 경전철 반대 주민대책위 결성

    8월  반대 주민대책위, 고양시장 직소민원 면담 및 집단시위

    9월  반대 주민 1인시위 시작(고양시청)

   12월  고양시, 경전철사업 중단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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