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0원에 산 문구점 약속어음으로 타인 주민등록등·초본 다 뗀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0면

송모(40)씨는 최근 인터넷 흥신소에 교제 중인 여자의 직업과 만나는 남자가 있는지 알아봐 달라는 의뢰를 했다. 결혼을 전제로 만났지만 사생활에 대해 말해주지 않는 상대방이 미심쩍었기 때문이다. 송씨가 아는 거라곤 여자의 이름과 주민등록번호뿐이었다. 3일 뒤 흥신소 업자는 여자가 유흥업소 종업원이며 내연관계의 남자가 있다고 알려줬다. 어떻게 3일 만에 여자의 집을 찾았는지 놀라워하자 업자는 “이름과 주민번호만 있으면 주민등록초본을 떼는 건 일도 아니다”라고 했다.

 개인정보 유출은 어제 오늘의 문제가 아니다. 이번에는 가짜 약속어음으로 개인정보를 빼내는 수법이 적발됐다. 가짜 약속어음 한 장이면 거주지와 가족관계, 병역기록 등이 담긴 주민등록 등·초본을 쉽게 발급받는다.

 현행 규정상 채권자는 채무관계를 증명할 자료만 있으면 채무자의 주소가 담긴 주민등록초본을 발급받을 수 있다. 채권자의 이름과 주민등록번호가 적혀 있는 약속어음도 증빙자료로 인정된다. 문제는 약속어음의 진위를 확인하는 절차가 없다는 데 있다.

 7일 기자가 직접 가짜 약속어음으로 동료 기자의 주민등록초본을 신청했다. 20장이 들어 있는 약속어음을 문구점에서 500원에 구입했다. 동료 기자를 채무자로 위장해 어음에 이름과 주민번호, 금액을 적었다. 초본 발급신청서에 ‘채권추심용’이라고 적어 수원 A동사무소에 제출하자 5분 만에 초본이 나왔다. 화성시의 B동사무소에서 같은 방법으로 신청하자 역시 아무런 제약 없이 초본을 받을 수 있었다.

 이번에는 수원의 C동사무소를 찾아가 초본에 적힌 주소와 세대주 이름을 이용해 동료 기자의 등본 발급 위임장을 임의로 작성해 제출했다. 발급 용도는 ‘입사지원용’이라고 적었다. 아무런 확인절차 없이 주민등록등본을 발급받을 수 있었다. 등본에는 가족관계를 비롯해 내밀한 개인정보가 몽땅 들어 있었다. A동사무소 남모 동장은 “현행 규정상으론 진위를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이름과 주민번호는 인터넷에서 쉽게 얻을 수 있다. 구글 검색창에 흔한 이름을 넣고 주민번호를 검색하자 이름과 주민번호 14자리가 드러난 게시글이 나타났다. 출처를 찾아 들어가자 중국의 유명 포털 사이트인 바이두(Baidu·百度)닷컴에 개설된 한 블로그가 나왔다. 블로그에는 680명의 이름과 주민번호가 적힌 글이 공개돼 있었다.

<본지 2010년 12월 13일자 18면>

 경기경찰청은 6일 가짜 약속어음으로 주민등록초본을 떼어 의뢰인이 요구하는 사람의 사생활을 감시해온 인터넷 흥신소 4개 업체를 적발해 김모(45)씨를 구속하고 4명을 불구속입건했다. 건당 5만~30만원씩 활동비를 받았다. 김기동 경기경찰청 사이버수사대장은 “마음만 먹으면 대포폰이나 온라인 사기까지 거의 모든 명의 도용 범죄에 악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허점을 뒤늦게 안 행정안전부 관계자는 “개인정보가 새 나가지 않도록 관련 제도를 개선하겠다”고 말했다. 예컨대 광주광역시 광산구 등 일부 지자체가 시행 중인 타인이 등·초본 발급을 요청하면 당사자에게 문자메시지로 알려주는 서비스를 검토할 만하다.

  유길용 기자

◆채권추심=금융거래나 상거래 과정에서 발생한 금전채권에 대해 정당한 사유 없이 채무 내용대로 돈을 지불하지 않을 때 이를 이행할 것을 촉구하는 행위다. 채권추심업무는 금융위원회의 허가를 받은 업체가 추심의뢰인의 위임을 받아 채무자에 대한 재산 조사와 소재 파악, 변제 촉구, 변제금 수령 등을 대행할 수 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