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 보려면 트렌드 대신 갓 떠오른 이슈 주목하라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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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호 28면

④미래학 방법론

짐 데이터의 미래학 이야기

한국뿐 아니라 많은 나라에서 미래학 서적이 출간되고, 미래를 예측하는 활동이 빈번하다. 그러나 대부분은 어떤 미래학 방법론이 적절한지 검토하지 않은 채, 바로 ‘본론으로 뛰어드는’ 조급증이 엿보인다.

이런 배경에는 통계를 이용한 양적 방법론에 대한 무비판적인 믿음이 깔려 있다. 반면 참여 관찰이나 인터뷰 등을 이용한 질적 방법론은 주관적이고, 그래서 신뢰성이 떨어진다고 간주한다. 나도 예전엔 그렇게 생각했다. 때때로 나는 미국 국립과학재단이 후원하는 강좌에서 대학 교수들과 학생들에게 양적 방법론을 가르쳤다. 일반 통계뿐 아니라 컴퓨터 모델링에도 한동안 푹 빠진 적이 있다. 초기 미래학자들은 양적 방법론을 통해 미래를 예측할 수 있다고 믿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미래학을 공부하고, 연구하고, 가르칠수록 대부분의 양적 방법론이 그다지 쓸모가 없을뿐더러 지나치게 사실을 오도하는 경향이 있음을 알게 됐다. 실제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는 불확실하고 예측 불가능한데, 숫자로 표현되는 양적 방법론은 마치 우리가 흔들림 없는 정확한 세계에 살고 있는 것처럼 착각하게 만든다.

물론 양적 방법론의 역할은 분명히 존재한다. 그 유용성은 예컨대 컴퓨터 모델링 연구자가 스스로 가정한 것들을 좀 더 분명하게 범주화시킬 수 있다는 데 있다. 미래를 예측할 때 연구자들은 때로 상당히 모호한 말들을 어지럽게 늘어놓는데, 수학적 연산에 기반을 둔 양적 방법론은 이런 모호함을 줄일 수 있다. 그러나 어떻게 하든 미래는 예측할 수 없다.

그렇다면 미래학에선 어떤 방법론을 사용할까. 나는 오랫동안 이머징 이슈(emerging issue) 분석법이 유용하다고 믿고 있다. 이는 많은 사람이 미래를 예측할 때 사용하는 트렌드(trend) 분석과 다르다. 트렌드 분석은 현재의 흐름을 형성하는 어떤 요소를 찾아내, 그것의 역사적인 발전과정을 되짚어본 뒤, 발전의 속도를 감안하면서, 그 요소가 미래에 어떤 식으로 영향을 미칠지 가늠하는 것이다. 이 방법으로 우리는 과거의 어떤 흐름이 미래에도 지속될 것으로 예상하고, 그에 따라 미래사회를 엿볼 수 있다. 그러나 트렌드는 대부분 지속되지 않고 사라지기 때문에 이 방법으로 미래를 예측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트렌드를 방해하는 요소들이 꼭 등장하게 마련이다.

이렇듯 트렌드가 지속되지 못하는 이유는 예상치 못한 사건, 즉 이머징 이슈 때문이다. 따라서 이머징 이슈를 분석하는 것은 중요하다. 이를 위해 50년 넘게 미래학계에서 공공정책과 그 정책의 변화과정을 추적하면서 이머징 이슈 분석법을 연구한 몰리터(Graham Molitor)의 관점을 따라가 보자.

지금 우리 눈앞에 보이는 것들은 과거엔 없었다. 요즘 사람들이라면 대부분이 알고 있는, 혹은 걱정하는, 트위터나 블로그ㆍ토크쇼 등에서 논의되는 문제들 또는 국회에서 빈번하게 등장하는 연설 주제들은 예전엔 존재하지 않았다. 현대의 기술, 사회제도, 종교적 신념, 정치적 이념, 질병, 전대미문의 사건 등도 그렇다. 이런 현대의 문제들(혹은 기회)은 과거 그 모습을 드러낼 때 알아보는 사람들이 거의 없었다. 혹 몇 명이 트위터 같은 곳에서 조심스럽게 떠들었는지 모르지만 설사 이들의 이야기를 들었더라도 대부분의 사람은 괴짜들이 떠벌리는 망상쯤으로 치부했을 것이다.

그러나 몇 명은 이런 ‘괴짜들’의 이야기를 주의 깊게 듣고, 다른 사람들에게 전달하기 시작한다. 이들은 아마 사회에 적응하지 못해 따돌림 받거나, 불평을 늘어놓는 사람들일 수 있다. 노숙자ㆍ마약중독자ㆍ범죄자, 혹은 대학 교수들일 수도 있다. 마침내 몇몇 대학 교수들이 이들의 이야기에 어떤 의미가 담겨 있는지 알아채고, 강의실에서 그 사실을 언급하기 시작한다. 학생들은 교수들이 하는 말을 무시한 지 오래됐지만, 주위 동료들이 관심을 갖기 시작한다. 이들은 커피를 마시면서, 혹은 블로그를 통해 들은 이야기를 이어간다. 점점 더 많은 사람이 이 사실을 알아차리고 글을 쓰고, 떠들기 시작한다. 식자층의 의견을 대변하는 저널에서도 이 사실을 다루고, 인기 없는 지상파 라디오 방송에서도 지나가는 말로 이런 사실이 보도된다.

이 사실이 뉴욕 타임스에 조그마한 기사로 취급되고, 샌프란시스코의 지상파 TV 방송국이 토크쇼를 제작한다. 그러자 주변 방송국들이 추가 보도에 나서고, 급기야 샌프란시스코의 저명한 신문 ‘클로니클’이 주요 기사로 보도한다. 이번엔 학계가 이 문제에 초점을 맞춰 연구에 나서고 이에 관련된 학술회의가 개최된다. 마침내 미국 전역을 커버하는 TV 방송국과 신문사에 이런 사실이 언급된다. 이제 이 주제는 장안의 화제가 되었고 대륙을 휩쓰는 주제가 되었다.

시간이 흐른다. 어느새 열광적인 유행은 지나가고 사람들은 이 사실에 익숙해진다. 어린이들은 이런 사실이 도처에서 벌어지는 환경에서 자라나고 이를 자연스럽고 일상적인 일로 여긴다. 머지않아 이 일은 사라진다. 누구도 이를 알아차리지 못한다. 어찌 보면 신기루 같은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어떤 사건은 아무것도 아닌 것에서 발단해 어떤 일 때문에 급격하게 성장하고, 또 어떤 사건 때문에 눈앞에서 사라진다. 이것이 초기 사건 분석의 기본적인 가정이다. 트렌드 분석은 이미 잘 진행되고 있는 일들, 이를테면 초기에 나타난 뒤 오랜 시간이 흘러 거의 일상이 되기 직전의 것들을 분석 대상으로 삼는다. 트렌드 분석은 예측이 가능한, 이미 과거로부터 현재까지 추적이 가능한 일들을 주목하는 셈이다.

그러나 이머징 이슈 분석법은 가능한 한 첫 주목을 받은 시점부터 관심을 둔다. 이를 탐지하려면 괴짜 과학자, 사회의 주변 인물, 엉뚱한 출판물이나 웹사이트, 예술가나 시인 또는 아직 출간되지 않은 글에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 이 시리즈의 첫 번째 글에서 나는 ‘데이터의 미래학 제2법칙’을 언급하면서 미래에 유용한 아이디어는 처음엔 터무니없는 이야기로 들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제 왜 이런 말을 했는지 이해가 갈 것이다. 미래학자가 미래에 관해 떠들 때 사람들은 대부분 “말도 안 된다”고 반응한다. 한 번도 들은 적이 없어서다. 그러나 트렌드에 대해 말하면 “나도 들어봤다”는 반응이 돌아온다. 만약 남들로부터 엉터리라는 평가를 받는 아이디어를 들었다면 그건 이머징 이슈일 가능성이 크다. 번역=하와이 미래학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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