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자율 없는 자율고 정책이 불러온 미달 사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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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8면

학교 다양화를 통해 공교육의 질을 높이려는 자율형 사립고(자율고) 정책이 진퇴양난(進退兩難)의 형국이다. 어제 마감한 서울 지역 자율고 2011학년도 신입생 추가모집에서도 미달 사태가 빚어졌다. 등록금을 비싸게 받는 대신 정부 지원을 받지 않는 자율고는 정원을 채우지 못하면 정상적인 학교 운영이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 교육과학기술부는 급기야 신입생 충원을 못한 학교가 요청할 경우 자율고 지정을 유예하거나 취소하는 방안을 대책으로 내놨다. 설립 2년째를 맞는 자율고가 정착은커녕 후퇴 수순을 밟는 듯한 모양새다.

 자율고의 파행은 예견됐던 결과다. 이름만 자율고일 뿐 진정한 자율이 허용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학생 선발권을 제한하고 있는 것부터가 문제다. 서울 지역의 경우 내신 성적 50% 이상 학생 대상으로 무시험 추천 전형으로 신입생을 뽑게 했다. 서류·면접 전형으로 학교 특성에 맞는 우수 학생을 뽑을 수 있는 길을 막아 놓은 것이다. 이래서는 자율고들이 우수 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다양한 교육과정을 운영하는 데 한계가 따를 수밖에 없다. 학생·학부모 입장에서 자율고가 등록금은 3배나 비싼데도 일반고와 별반 차이가 없다고 느끼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이러니 지원을 꺼리게 되고 미달 사태가 빚어지는 게 아닌가.

 자율고의 설립 취지는 학교가 교육과정·학사운영의 자율성을 갖고 수월성 교육을 함으로써 교육 경쟁력을 높이자는 것이다. 이런 취지를 제대로 살리려면 학생·학부모의 수요와 선호(選好)가 전제돼야 한다. 지금처럼 신입생 충원도 못하는 자율고로는 어림없는 일이다. 교과부는 지금이라도 자율고 제도를 전면 손질해야 한다. 사교육 유발이나 귀족학교 운운하며 반대하는 쪽의 눈치를 보느라 무늬만 자율고를 계속 가져갈 거라면 차라리 일반고 전환이 낫다. 학생·학부모를 계속 혼란스럽게 할 수는 없지 않은가. 그게 아니라면 명실상부(名實相符)한 자율(自律)고가 되도록 하는 게 옳다. 학생 선발권을 포함해 학교 운영 전반에 자율권을 줘 학교가 제 역할을 하게 해야 한다. 교과부의 심사숙고와 결단을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