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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화 유동성 안전망 더 촘촘히 하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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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한택수
국제금융센터 이사장

아시아개발은행(ADB)에 따르면 한국을 비롯해 인도네시아·태국·말레이시아 등 아시아 주요 국가에서 국내 채권에 대한 외국인 투자 비중이 1년 전에 비해 거의 두 배 가까이로 급증했다고 한다. 올해 중 신흥공업국들을 향한 외국인 투자자금 유입 규모는 지난해에 비해 최소한 약 3000억 달러 이상 증가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이웃 나라 중국의 경우 올 3분기에 유입된 핫머니만 1000억 달러가 넘을 것이라는 추측이 나온다.

 현재 미국·일본 등 주요 선진국의 기준금리는 평균 0.5% 수준이다. 이에 비해 중국·브라질·러시아 등 신흥공업국들의 기준금리는 평균 5.5%에 달한다. 두 지역 사이의 금리 격차가 두드러질 뿐 아니라 단기간 내에 선진국 경제가 크게 회복될 전망도 높지 않기 때문에 그동안 주로 선진국 역내에서 운용되던 자금이 이처럼 물밀듯 신흥공업국으로 유입되고 있는 실정이다. 게다가 역외로부터의 자금 유입이 자금 유출보다 항상 많았던 유럽연합(EU)에서도 올해는 10년 만에 처음으로 유출이 유입을 초과한 상태다.

 미국·일본·EU 등 그동안 세계 경제를 이끌고 왔던 중심 국가들은 이미 재정지출 확대를 통해 부족한 민간 수요를 보전할 능력을 사실상 상실했다. 오로지 가용 정책 수단이라고는 금융정책뿐이다. 그중에서도 금리정책은 무용지물이 돼버렸다. 기준금리가 이미 제로 수준이라 더 낮추고 싶어도 낮출 여지가 없기 때문이다. 결국 의지할 데라고는 실증적으로 별로 검증되지 않은 양적 완화라는 조치만 남았을 뿐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올 11월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ed)가 세계적 규모의 금융위기가 어느 정도 수습되고 안정됐음에도 불구하고 오로지 미국의 국익을 위해 다른 국가들의 반대에도 개의치 않고 추가로 대규모 양적 완화를 결정했다. 이에 따라 마치 도미노 현상처럼 일본과 EU 등을 포함한 주요 선진국 모두가 양적 완화에 사실상 동조하고 있다. 결국 전 세계는 당분간 실물경제의 움직임과는 괴리된 채로 과잉유동성의 함정에 빠질 위험성이 그만큼 높아졌다.

 특히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이자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의 의장국이었던 한국은 물론이고 세계 제2위의 경제대국으로 부상한 중국도 그런 위험에서 안전하다고 볼 수 없다. 국제적으로 어느 정도 경제적인 규모와 실력을 갖추고 있으면서도 국제사회에서 아직은 자국 통화가 준비통화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국제적인 자금의 급격한 유출입으로 인해 환율 급변은 물론 심지어 외화유동성의 위기를 언제라도 겪을 가능성이 있다. 특히 경제 규모에 비해 수출입의 비중이 유달리 높은 우리나라엔 늘 위험성이 존재하는 것이 현실이다. 최근 들어 대부분의 잘나가는 신흥공업국이 거의 동시에 외국 자금의 유출입에 대한 규제를 추진하고 있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발 빠른 중국과 대만은 이미 G20 서울 정상회의가 열리기 하루 전에 각각 단기적인 자본 유출입을 규제하는 새로운 조치를 도입한 바 있다. 우리 정부도 금융위기 이후 일시적으로 비과세되고 있었던 외국인 채권 투자에 대한 이자소득에 대해 종전대로 과세로 전환하겠다는 방침을 얼마 전 발표했다.

 그러나 이번 조치의 효과는 앞으로 예상되는 외화유동성의 지나친 유입에 대해 정부도 수수방관하지 않겠다는 대외적인 선언에 불과하다고 본다. 문제는 선언 수준을 넘는 실효성 있는 대응책을 내놓아야 한다는 점이다. 예상되는 과잉 외화유동성의 규모에 상응하는 대비책을 사전에 준비해 단계적이면서도 효과적인 대응에 만전을 기해야 할 것이다.

한택수 국제금융센터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