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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짱이들을 위하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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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7면

이윤정
문화칼럼니스트

올해는 유엔이 정한 ‘생물다양성의 해’란다. 그걸 알게 된 건 ‘생물다양성’ 캠페인에 어쩌다 친구 따라 참가한 아이 때문이었다. 아이들은 ‘미호종개’ ‘감돌고기’ 같은 알려지지 않은 멸종위기 동물을 모니터하고, 홍보활동도 하는 모양이다. 진짜 위기의식을 가지고 캠페인을 하는 것인지, 이른바 ‘스펙’ 쌓기에 이 주제가 먹히는 것이어서 하는 건지 진심은 모르겠지만, 어쨌든 거기에서 작은 것들과의 ‘공존’의 중요성을 깨닫는 것 하나만 건져도 다행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최근 한 가수가 외롭게 세상을 떠났다. ‘달빛요정 역전 만루홈런’이라는 이름의 그는 꽤 이름이 알려졌음에도 불구하고 가난에 시달린 채 혼자 자취방에서 쓸쓸히 세상을 떠났다. 지난해에는 또 유명 영화의 조감독이 생활고를 견디다 못해 자살하기도 했다. 세상 사람들은 이렇게 돈도 못 벌고 딱히 생산성도 없어 보이는 사람들을 ‘베짱이’족이라 한다. 아무리 시대가 ‘88만원 세대’를 양산하는 때라지만, 그래도 취직을 위해 노력하는 청년들은 그 노력에 대해 동정심이라도 살 수 있다. 하지만 가까운 사람이 인디음악을 한다거나 영화판에 뛰어들었다 하면 “참 세상물정 모른다”며 한심하다는 시선부터 보내기 일쑤다.

 인디밴드를 하고 있는 한 지인은 청운의 꿈을 품고 지방에서 서울로 올라왔다. 10년 가까이 활동을 하며 나름대로 인정은 받았지만 여전히 단돈 몇 만원의 행사료를 받기 위해 하루에 서울에서 지방으로 100㎞ 이상을 뛰어다녀도 생활을 유지하기가 힘들단다. 좀 더 알려진 음반 제작사를 하는 또 다른 지인도 마찬가지다. 멀쩡한 직장을 버리고 10년을 뛰어다녀 음악성 하나는 인정받는 레이블로 키웠는데도 그를 둘러싼 소문은 늘어나는 빚 얘기뿐이다. 금전으로 보상받지 못하는 그들의 열정은 효율성과 경쟁력을 최고로 여기는 부지런한 ‘개미’들이 지배하는 이 시대에 생산성 없는 ‘베짱이’들의 안타까운 몸부림으로밖에 여겨지지 않는다.

 그런데 그런 베짱이족들이 없다면 이 고단한 세월을 버텨낼 노래와 영화들은 어떻게 만들어질 수 있을까. 미미한 생물도 제 몫을 가지고 생물다양성을 유지해야 생태계를 유지할 수 있는데, 인간 세상에 없어선 안 될 큰 위안과 즐거움을 주는 이들이 생존의 위기를 겪어야 한다는 건 모두가 함께 고민하고 해결해야 할 문제가 아닐까. 인터넷에, TV에 노래가 넘쳐나고, 영화 없이는 살 수 없다고 하는 사람들도 넘쳐나는데 정작 그걸 만들어내는 창작자들은 이런 고통을 받는 현실은 분명 달라져야 한다. 500원짜리 노래 하나 내려받으면 절반 이상을 그 음악을 전해주는 음원 사이트가 가져가고, 수십억원이 넘는 영화에서 필수적인 노동의 1년 치 대가가 직장인의 한 달 치 월급도 안 되는 것이 현실이다. 그 음악과 그 영화를 보고, 즐거움을 얻는 사람들은 분명 창작자에게 돌아갈 몫이 그것보다는 크다고 생각하는데도 말이다. ‘베짱이족들이 살지 못하는 세상이라면 세상 사람들의 문화생태계 역시 위기에 처할 수밖에 없다. 그들과의 공존이 가능한 구조를 만드는 일은 우리의 온전한 삶을 위해 절실하다.

이윤정 문화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