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서 뺏은 센카쿠, 러시아에 뺏긴 쿠릴열도, 일본은 지금 ‘두 개의 영토전쟁 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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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하일 미하일로비치 벨리 주일 러시아 대사가 1일 일본 마에하라 세이지 외상을 만난 직후 기자들에 둘러 싸여 질문을 받고 있다. [도쿄 AP=연합뉴스]

일본이 두 개의 영토전쟁을 동시에 치르고 있다. 센카쿠(尖閣)열도 영유권을 둘러싸고 중국과 한바탕 홍역을 치른 데 이어 이번에는 쿠릴열도 문제로 러시아에 뒤통수를 맞았다. 쿠릴열도 4개 섬은 제2차 세계대전 때 일본이 러시아에 빼앗겼다고 주장하는 땅이고, 센카쿠열도는 중국이 일본에 점령당했다고 반발하는 곳이다. 중·러가 영토 문제로 일본을 협공하는 국면이다.

 영토 분쟁은 일본엔 피할 수 없는 숙명과도 같다. 바다 멀리에 부속 도서가 많은 지리적 특성과 일찍 근대화에 성공, 영토 확장을 도모한 역사적 사실과도 무관치 않다. 분쟁의 근원이 일본이 일으킨 전쟁과 직·간접적으로 얽혀 있는 경우도 있다.

 동아시아에는 이 밖에 난사(南沙)군도와 시사(西沙)군도 분쟁이 존재한다. 이를 둘러싼 영유권 갈등은 중국과 필리핀·베트남 등 동남아 국가들 사이의 일이지만 최근엔 미·중 갈등으로 초점이 옮겨지는 양상이다. 남중국해를 ‘핵심 지역’으로 선포한 중국과 자원 수송로인 이 지역 내 ‘항행(航行)의 자유’를 주장하는 미국이 충돌하기 때문이다. 한 국제법 전문가는 “해양영토 분쟁이 현재 동아시아 정세의 최대 경색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며 “국제 역학 관계가 전환기를 맞을 때마다 잠복해 있던 영토 문제가 분출하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쿠릴열도=홋카이도(北海道) 북서쪽의 에토로후(擇捉)·구나시리(國後)·시코탄(色丹)·하보마이(齒舞) 등 전체 18개 섬으로 이뤄진 쿠릴열도 섬 가운데 남단 4개 섬이 영토 분쟁의 대상이다. 아이누족이 살던 고유 영토라고 보는 일본에선 ‘북방영토’라 부른다. 표현에서부터 강한 수복 의지가 느껴진다.

 이 섬은 1855년 러·일 통상조약 이후 일본 영토로 간주됐으나 1945년 일본 패망과 함께 소련군이 점령하면서 소련연방에 편입됐다. 일본인은 중앙아시아로 강제이주 당했고 러시아인이 들어가 살았다. 영토 분쟁으로 러·일은 2차 대전 이후 아직까지 종전에 공식 합의를 하지 않은 상황이다.

문제가 꼬인 것은 56년 양국이 외교관계를 회복하면서 발표한 공동선언에서 “평화조약을 체결하면 하보마이·시코탄 두 섬은 일본에 반환한다”고 명시한 데서 비롯됐다. 일부 반환의 전제 조건인 ‘평화조약 체결’을 위한 협상조차 냉전 기간 동안 이뤄진 적이 없기 때문이다. 더구나 소련은 60년 “일본에서 모든 외국 군대가 철수해야만 반환이 가능하다”는 조건을 추가했고 이후 소련은 “일본과의 사이에 아무런 영토 문제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입장으로 돌아섰다. 실효 지배를 하고 있는 소련(이후 러시아)으로선 부분 반환에조차 응할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그러다 소련 해체 후인 93년 옐친-호소카와 도쿄 선언에서 양국은 “4개 섬의 귀속 문제를 해결한 뒤 평화조약을 체결한다”고 합의했다. 하지만 여전히 협상은 진전되지 못했다. 이후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전 대통령이 강한 러시아의 부활을 내걸고 국제사회에서의 영향력을 회복하면서 문제 해결은 더욱 요원해졌다.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대통령의 전격 방문도 이러한 흐름의 연장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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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센카쿠열도=중국에서 댜오위다오(釣魚島)라고 부르는 센카쿠열도는 다섯 개의 작은 섬과 세 개의 암초로 이뤄진 무인도다. 일본이 실효적 지배를 하고 있지만 거리상으로는 일본 오키나와보다 대만에서 더 가깝다. 일본은 청일전쟁 기간인 1895년 무주지 선점 원칙에 따라 자국 영토에 편입했다고 주장한다. 반면 중국과 대만은 이미 중국령이었던 곳을 불법적으로 빼앗겼다는 입장이다.

 실효 지배를 하고 있는 일본은 “분쟁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반면 중국은 92년 영해법을 제정하면서 자국 영토로 명문화했고 끊임없이 문제를 야기하며 ‘분쟁 지역화’하려 하고 있다. 9월 중국 어선과 일본 순시선의 충돌로 센카쿠 분쟁은 최고조에 이르렀다.
예영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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