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농산물 유통 개선, 농협이 앞장서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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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8면

이명박 대통령이 “고생해서 생산한 채소를 농민들은 헐값에 팔고, 소비자는 비싼 값에 사먹는 경우가 많다”며 “불공정 사례가 없도록 농수산물 유통구조를 개선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온 사회가 배추 파동으로 홍역을 치른 만큼 당연히 취해야 할 조치다. 최근 보도에 따르면 고랭지 배추와 달리 12월에 출하(出荷)될 월동 배추의 경우 생산 과잉으로 가격 폭락을 우려할 정도라고 한다. 이러다간 또 배추밭을 갈아엎는 불상사가 날지 모른다.

 이미 정답은 나와 있다. 우선 농협을 중심으로 전국적인 공동판매회사를 세워야 한다. 또 계약재배와 직거래 비중을 늘리고, 도매시장법인은 등록제로 바꾸는 것이다. 농협은 그동안 손실을 보기 쉬운 채소류는 공동판매나 계약재배를 꺼렸다. 이로 인해 우월적인 가격교섭력을 지닌 중간도매상이 산지 수집상을 통해 밭떼기로 80% 이상을 사들이는 게 현실이다. 농협이 계약재배 물량을 늘리고 리스크를 정부와 함께 지는 쪽으로 나아가야 한다. 그래야 유통비용이 소비자가격의 절반을 넘는 기형적(畸形的)인 다단계판매 구조도 간소화할 수 있다.

 현재의 도매시장 경매제도도 문제다. 소수의 중간도매상들이 가격 결정권을 독점하게 되는 구조다. 공정거래위원회의 ‘농산물 유통과 가격 안정에 관한 법률(농안법)’ 개정안조차 이들의 반발로 좌초될 정도다. 한시바삐 도매시장법인·시장도매인 지정제를 등록제로 바꿔 경쟁구도를 확산시킬 필요가 있다. 이상기후에 대비해 채소류의 저온저장이나 절임 시설을 확충해야 한다.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이 필요한 대목이다.

 그동안 농산물 유통구조 개선은 수없이 시도됐지만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이제 대통령이 직접 챙기겠다고 한 만큼 근본적인 혁신을 기대한다. 무엇보다 농협의 역할이 중요하다. 농협은 돈이 되는 신용사업에만 매달릴 게 아니라 농민들이 생산한 농산물을 제값에 판매하는 본연의 임무로 돌아가야 한다. 정부의 강력한 지원과 제도적 뒷받침은 그 다음이다. 농협이 바로 서야 고질적인 농산물 유통구조를 바로잡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