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태균 기자의 푸드&메드] 라면·김치업체, 짠맛 줄이는 ‘착한 담합’ 필요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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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치와 라면은 환상의 커플이다. 배추김치는 우리 국민이 쌀 다음으로 많이 먹고, 라면(다소비 순 25위)은 1인당 매주 평균 1봉지 이상 섭취한다.

 이런 인기는 거저 얻은 것이 아니다. 김치는 우리 밥상의 ‘단골손님’이자 세계 5대 건강식품, 6대 전통식품, 항암식품. 라면은 조리법이 간단하고 맛이 오묘하며 한 그릇 먹으면 속이 든든해진다.

 그러나 약점도 공유한다. 소금과 나트륨이 많이 들어 있다. 소금을 과다 섭취하면 ‘침묵의 살인자’로 불리는 고혈압 위험이 높아진다는 것은 상식이다. 혈압을 올리는 것은 소금의 한 성분인 나트륨이다. 각종 가공식품의 포장지(영양성분표)엔 소금 대신 나트륨 함량이 표시돼 있는데 이 수치에 2.5를 곱하면 소금량이 얼추 계산된다.

 나트륨은 소금이나 짠 음식에만 들어 있는 것이 아니다. 과자·빵은 그리 짜지 않지만 나트륨 함량은 상당하다. 베이킹파우더·보존료(식품첨가물) 등에 나트륨이 숨어 있다. 쇠고기·돼지고기 등 육류, 조미료(MSG)·소시지·햄·베이컨·케첩·칠리소스·겨자·간장 등도 ‘소문 없이’ 나트륨 섭취량을 증가시키는 식품이다.

 다시 라면과 김치 얘기다. 우리 국민, 특히 젊은 세대에게 짠맛의 영점(零點)을 잡아주는 식품이 라면이라고 기자는 생각한다. ‘라면중독’이란 말이 있을 만큼 주기적으로 라면이 먹고 싶은 것은 익숙해진 짠맛의 유혹일 수 있다. 이런 소비자를 계속 붙잡아 두기 위해 라면업체들은 라면 한 봉지에 2000㎎에 가까운 나트륨을 넣는다. 세계보건기구(WHO)가 권장하는 하루 나트륨 섭취 제한량이 2000㎎(소금으로 환산하면 5000㎎)이므로 라면을 국물까지 남김없이 먹는다면 권장량을 거의 채우게 된다.

 라면을 먹을 때 늘 곁들여지는 음식이 ‘찰떡궁합’인 김치다. 김치도 라면처럼 짠맛의 기준이자 나트륨의 ‘온상’이다. 우리 국민의 나트륨 섭취에 기여하는 상위 30대 식품 중엔 배추김치(하루 전체 나트륨 섭취의 20%)가 1위며, 이외에 김치류가 5가지(7위 총각김치, 13위 깍두기, 17위 나박김치, 22위 열무김치, 25위 동치미 등)나 포함돼 있다. 따라서 국민의 평균 나트륨 섭취량을 줄이는 데 열쇠를 쥔 것은 김치와 라면이라고 볼 수 있다.

 두 식품의 저염화(저나트륨화)가 우리 국민의 혈관건강에 직결돼 있다. 정부·미디어·소비자단체가 라면 제조업체에 나트륨 함량을 최대한 줄일 것을 요구하고, 김치 담글 때 염도를 2% 이하로 낮출 것을 홍보하는 것은 이래서다.

 그러나 이런 노력은 잘 먹히지 않고 있다. 나트륨량을 줄이면 라면의 고유한 맛을 지키기 힘들다고 판단한 라면 제조업체가 적극성을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감칠맛(조미료 등)으로 짠맛(나트륨)을 대체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는 것이 라면업계의 고민이다. 게다가 지금은 나트륨량을 먼저 줄인 라면이나 포장 김치 제조업체들이 손해보게 돼 있는 구조다. 라면·김치를 먹으면서 건강보다 맛을 우선하는 소비자가 아직 다수인 데다 사람의 입맛은 그리 쉽게 변하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기자는 라면과 김치 업체들이 10년에 걸쳐 해마다 2~3%씩 나트륨량을 함께 줄여나가자고 결의하고 함께 실천하기를 기대한다. 국민건강을 위한 ‘착한 담합’을 통해 연 2~3% 정도 나트륨량을 줄이면 소비자들도 맛의 변화를 잘 알아채지 못하고 차츰 적응할 것이다. 아울러 짠맛의 영점을 낮추는 효과도 기대된다.

박태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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