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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 난개발' 막을 길 있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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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얼마 전 고위 공직자로 부임한 한 선배를 만난 적이 있다. 그 선배는 아름다운 풍치를 자랑하던 이 지역이 마구잡이 개발로 훼손된 것을 한탄하면서 이것은 환경보존에 대한 직무유기이기 때문에 담당자들을 형사처벌해야 한다고 비분강개하는 것이었다. 나는 고위 공직자 중에도 이와 같이 환경에 대해 깊은 애정을 가진 사람이 있다는 사실이 기뻤다. 그동안 우리는 가난을 극복하기 위해 경제성장을 최고의 지상목표로 설정하고 앞만 보고 달려 왔다. 개발이냐 환경이냐 하는 중요한 윤리적 문제를 차분히 생각해볼 겨를도 없이 경제성장.수출증대.산업개발 등을 목표로 질주해 왔다. 이제야 조금 여유를 갖고 이런 개발지상주의에 의하여 파괴된 환경을 보면서 각성하게 되었다. 성장속도가 조금 늦어지더라도 환경보존에 좀 더 신경썼으면 좋았을 걸 하고 후회하기도 한다.

사실 참여정부의 당위성은 이러한 경제성장과 개발 이데올로기를 내세워 사회정의를 무시하고 환경을 파괴해 왔던 전 정권들의 역사적 오류와 불균형에 대한 교정, 안티 테제에 있을 것이다. 그러나 최근 생명과 관계된 정책결정에서 과거 정부들의 전철을 밟는 듯해 매우 염려된다. 지금 한국 생명과학이 세계 최초로 인간 배아줄기세포를 배양했다고 해서 한창 들떠 있다. 그러나 조심해야 한다. 인간 배아줄기세포 연구는 난치병 치료 등 앞으로 인류에게 큰 혜택을 제공할 수도 있겠지만 동시에 인간복제, 잡종 및 키메라 생성, 인간생명의 상품화 등 생명 난개발로 이어질 많은 위험성을 수반하고 있다.

더욱이 외국 언론들은 가장 먼저 인간복제가 이루어질 국가로 한국을 꼽고 있다. 세계 수준의 복제 기술, 혈연 중심의 유교적 배경, 적극적 정부 정책, 과학자의 생명윤리 의식 결여, 인간 배아 복제를 허용하는 법률 등이 그 이유다. 그러므로 생명이냐 경제냐 하는 어려운 선택이 또다시 우리에게 던져진 것이다. 우리가 경제적 이익을 탐하여 생명윤리를 뒷전으로 돌리고 생명 난개발을 감행하여 복제인간을 가장 빨리 생산하는 민족이 될 것인가, 또는 이제라도 우리 본연의 도덕성을 회복해 생명보존을 위해 경제적 손실을 감내할 줄 아는 성숙한 민족으로 거듭날 것인가.

마구잡이 개발에 의한 환경파괴는 되돌릴 수 없는 비가역적인 것이다. 그러나 인간생명의 본질인 유전자를 조작하는 생명 난개발은 이와는 비교가 되지 않을 엄청난 비가역적 파괴를 가져올 것이다. 그것은 21세기의 바벨탑으로서 인류의 멸망과 같은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몇몇 생명과학자의 성과에 흥분하여 성급하게 생명개발의 문을 너무 활짝 열어놓은 것은 아닌가 생각해볼 문제다.

예수께서 받은 가장 큰 시험은 '빵'(경제)이냐 '말씀'(생명)이냐 하는 문제였다. 예수는 이 궁극적 선택에서 경제보다는 생명을 택했다. "사람이 빵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으로 사느니라. " 이 교훈이 지금 우리에게 암시하는 바가 크다. 다른 국가들이 윤리적 이유로 망설이는 기술을 앞질러 개발해 경제적 이득을 추구할 것인가, 또는 조금 늦어지고 손해본다 하더라도 미래의 생명안전을 위해 좀 더 심사숙고할 것인가. 세계와 역사의 눈은 우리를 주시하고 있다. 과연 우리가 어느 쪽을 선택할 것인가. 국민 평균소득 2만달러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는 경제동물인가, 또는 도덕성을 갖춘 선진 민족인가.

어쨌든 우리는 후손에게 생명 난개발을 방관한 직무유기범이 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과학 선진국, 윤리 후진국'이라는 오명을 벗어 던져야 할 것이다. 과학기술의 도덕성, 특히 생명윤리의 확보. 이것이 바로 선진국으로 가기 위해 우리가 꼭 넘어야 할 고개이며 지불해야 할 대가가 아닐까.

김흡영 강남대 교수.신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