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취재일기

클린턴과 한끼 300만원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4면

참 요상하다. 저녁 식사 한 끼 같이 하기 위해 300만원 이상 내야 한다니. 함께 만찬을 할 인사가 전직 미국 대통령이고, 그 장소가 별 다섯 개짜리 고급 호텔이라 해도 얼른 납득이 가지 않는다.

그런데 이런 행사가 다음 주 서울에서 벌어질 참이다. 빌 클린턴 전 미 대통령의 한국어판 자서전 출판기념회가 바로 그렇다. 지난해 6월 그의 책을 낸 모 출판사가 해를 넘긴 저자 참석 출판기념회를 열면서 이런 별난 마케팅을 벌이는 중이다.

몇몇 신문에 낸 행사 안내 광고에 따르면 '빌 클린턴을 좋아하는 CEO 100분을 특별히 모신다'면서 그의 자서전을 100권 이상 구입하면 소정의 확인 절차를 거쳐 입장권 두장을 준단다. 양장본 자서전 가격은 3만3000원, 100권을 산다면 330만원이 든다는 계산이다. 출판사 희망대로 100명의 사장님들이 참석한다면 참석비 수입만 3억원이 훌쩍 넘어간다. 과연 그 돈이 어떻게 쓰일지, 누구 주머니를 불릴지는 알 수 없다. 그렇지만 약간의 '정성'을 전달하고 책 한 권 받아오는 여느 국내 출판기념회에 비하면 터무니없는 것은 분명하다.

클린턴이 비록 현재 유엔 쓰나미 대사이고, 이날 인류의 공존에 관한 메시지를 전달할 예정이라지만 결국 이번 행사는 책을 더 팔기 위한 판촉의 일환이다. 자신을 위한 사적 행사에 불과하다는 얘기다. 출판사는 과연 무슨 생각으로 이번 행사를 열며 막대한 '자릿값'을 알리는 광고를 냈을까. '가진 사람'들의 속물주의를 노린 장삿속 아닌가. 한국의 전직 대통령 등 정. 재계, 학계 및 사회지도층 인사 1000여명이 참석한다는 광고 내용도 동참하면 지도층 반열에 서게 되리란 뉘앙스를 풍긴다. 꼬인 생각일까.

좋다. 주머니 사정이 넉넉하고, 내 인생을 바꿀 메시지나 세상을 뒤흔들 원리를 전해 줄 현자나 석학이라면 한번쯤 호기를 부릴 수 있겠다. 그렇지도 않은 전직 미 대통령과의 만찬이 그만한 가치가 있을까. 생각 없는 참석자들이 혹시 본전 생각에 클린턴과 사진이라도 같이 찍으려 우르르 몰려다니는 진풍경을 연출하지나 않을까 걱정이다.

김성희 문화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