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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류 전문가'가 필요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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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5000조원 규모의 일본 소비시장의 흐름을 관통하는 키워드로 '한류'가 1위로 꼽혔다. KOTRA가 지난해 일본의 30대 히트 상품을 분석한 결과 건강.편의.아름다움을 제치고 한류가 수위를 차지했다. '겨울연가'가 일등 공신이다. 그러나 일본에서 빅히트한 한국 상품을 찾기는 힘들다. '겨울연가 (후유노 소나타)'를 연상시키는 현대 쏘나타가 한류 붐을 마케팅으로 연결해 약진하고 있을 뿐이다. 일본 고객이 심정적으로 한국에 대한 프리미엄을 주고 있는 데도 말이다.

중국은 20년 이상 10%가량의 고성장을 해오면서 자본 유치와 '세계의 생산공장'에 걸맞은 대규모 생산거점을 구축했다. 주로 동부 해안지방을 중심으로 투자가 이뤄졌다. 현재 중국은 서부 대개발 사업을 진행하면서 상대적으로 낙후한 충칭.시안.청두.쓰촨성 등에 개발 자원을 집중 투자하고 있고 최근엔 자원이 풍부한 동북 3성(헤이룽장성.지린성.랴오닝성)에 많은 지원과 투자를 하고 있다. 기업 차원의 사업이나 국가 차원의 제휴를 하려면 이러한 지역에 관심을 돌리는 게 이미 포화상태인 동부 해안지방보다 장기적으로 더 많은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을 것이다. 중국에도 한류가 대세다. 중국의 젊은이는 한국의 온라인게임과 가요에 푹 빠져 있다.

미국 정부 조달시장 규모는 연 7000억달러로 우리나라 수출 규모의 세 배에 달한다. 상업시장(commercial market) 개척에는 엄청난 노력을 들이면서도 전략적 접근에 따라 시장개척 가능성이 무한한 유망 잠재시장인 미 정부 조달시장에 한국 기업의 참여는 극히 미미하다.

위 3개국의 예처럼 미국.중국.일본 등 세계 경제를 주도하는 나라의 흐름과 틈새를 간파해 전략적인 투자나 시장개척을 하는 것이 필요하다. 제한된 인력과 자원으로 세계시장 모두를 건드릴 수 없다. 가장 효과가 크고 부가가치가 높은 지역을 선별해 자원을 집중 투자해야 시장개척 생산성이 높다.

한류가 오래 지속되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예측이 있다. 한류가 지속되도록 하기 위한 국가.기업.개인적 차원의 노력은 계속하되, 이 시점에서 한류가 지속될 시스템을 만들어 가야 한다. 이를 위한 몇 가지 제안을 하고자 한다. 첫째, 정보기술(IT) 강대국으로서 정보통신부가 내놓은 'IT 839'를 비롯한 정보통신 인프라와 서비스를 전략적 거점에 수출하고 한국을 흠모하는 개발도상국의 중간관리나 학생들을 초청해 한국을 느끼게 하는 것은 향후 상품 수출과 시장개척에 있어 지렛대 역할을 할 것이다.

둘째, 동북아 공동 번영을 목표로 일본의 앞선 기술과 한국의 제품 개발 능력을 중국의 대량 생산기지와 연결하는 윈-윈 산업구조를 확산한다. 이를 위해서는 이미 선진국에서 크게 효과를 보고 있는 EMS(제품 제조과정 중 생산만을 특화해 자사 상표 없이 수탁 생산하는 방식)를 적극 활용하는 것도 필요하다. 세토베(SeToBe:서울.도쿄.베이징 세 도시의 영문 두 글자씩 이은 것임)라 명명할 수 있는 3국 간 협력 프로젝트를 정부와 민간 차원에서 점차 확대하고, 다자 간 협력 체제를 마련해 3국 간 역내 교역량을 늘려가야 한다.

셋째, 벤처가 다시 도약할 수 있도록 글로벌 벤처 스타를 양산할 수 있는 환경과 지원체계를 정비하고 (예를 들면 벤처종합상사) IT 분야에서 세계 일등제품이 속속 나오도록 해외시장 개척을 적극 지원해야 한다. 우리의 벤처 창업자들은 열정과 기술력, 패기로 무장했지만 자금과 마케팅 능력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가장 한국적인 게 가장 세계적인 것이다. 한류를 우리의 외교통상과 상품 수출에 적절히 이용할 절호의 기회가 왔다. 벤처를 비롯한 각 분야에서 국제감각과 전략적 안목을 지닌 한류 전문가가 많이 나와야 한다. 소프트한 문화뿐 아니라 하드한 상품과 인프라를 전 세계에 유포할 수 있는 사람들 말이다.

한류를 잘 활용해 한국의 벤처기업들이 세계 일등 제품을 만들어내기 시작하면 조선.철강.반도체 등 전통산업의 경쟁력과 함께 한국경제는 쌍두마차로 세계 경제에서의 위상이 날로 달라질 것이다. 소득 2만달러를 넘어 3만달러를 지향하는 비전도 지금부터 제시해야 한다. 올림픽과 월드컵을 치러낸 우리 국민의 열정을 승화해 모처럼 찾아온 호기를 세계 일등국가로 탈바꿈하는 데 한류 전문가들의 역할을 기대해 본다.

신승일 한국지식재단 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