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까진 노모 뒤에 찬호, 오늘부턴 찬호 뒤에 노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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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을 맞기까지 아프지 않은 곳이 없었다. 유니폼을 일곱 번이나 갈아입었다. 미국 땅에 발을 디뎠을 때 스물한 살이던 청년은 17년을 고독하게 싸웠다.

박찬호(37·피츠버그)가 미국 메이저리그에서 아시아 출신 투수 최다승 타이 기록을 세웠다. 일본에서 메이저리그 개척자로 추앙받는 노모 히데오(42·2008년 은퇴)와 같은 개인 통산 123승 고지에 올라섰다.

피츠버그 박찬호가 13일(한국시간) 신시내티와의 원정경기에서 8회 마운드에 올라 힘차게 공을 뿌리고 있다. 1이닝 무실점으로 구원승을 따낸 박찬호는 개인 통산 123승으로 노모 히데오(일본)와 함께 미국 메이저리그(ML) 아시아 출신 투수 최다승 타이 기록을 세웠다. 1994년 미국 땅을 밟은 뒤 열일곱 시즌 만에 이뤄낸 쾌거다. [신시내티 AFP=연합뉴스]

1995~98년 LA 다저스에서 한솥밥을 먹을 당시의 노모 히데오(왼쪽)와 박찬호. [중앙포토]

◆“고통은 내가 만든 착각”=박찬호는 13일(한국시간) 신시내티와의 원정 경기에서 0-1로 뒤진 8회 팀의 두 번째 투수로 마운드에 올라 1이닝을 무실점으로 막았다. 피츠버그가 9회 초 3점을 뽑아 3-1로 역전승하면서 그에게 시즌 3승(2패)째가 주어졌다. 메이저리그 데뷔 후 17시즌, 467경기 만에 따낸 123번째 승리였다.

2004년까지만 해도 노모에게 통산 24승이나 뒤졌으나 한 걸음씩 추격한 끝에 마침내 어깨를 나란히 했다.

경기 후 박찬호는 자신의 인터넷 홈페이지를 통해 “어려움이나 고통도 내가 만든 기준에 의한 착각이다. 내 인생에 불행은 없었다. 내 기준에 맞지 않았을 뿐”이라고 소감을 전했다. 123승을 거두기까지 그가 얼마나 많은 고통과 싸웠는지를 엿볼 수 있다.

◆끊이지 않은 부상과 시련=1994년 한양대 재학 중 LA 다저스에 입단한 박찬호는 당시 경제위기를 겪고 있던 한국의 희망 아이콘이었다. 97년부터 팀 내 선발투수로 자리 잡아 2001년까지 다섯 시즌 연속 10승 이상을 거뒀다.

메이저리그 정상급 투수로 우뚝 선 그는 2002년 자유계약선수(FA) 자격을 얻어 5년간 총액 6500만 달러를 받고 텍사스로 이적했다. 연평균 1300만 달러(약 150억원)를 버는 스포츠 재벌이 됐다.

이때부터 부상 악령과 싸웠다. 허리 부상이 심해지기 시작했고, 오른 허벅지도 자주 다쳤다. 2002년 9승에 그치더니 2003년 1승, 2004년에도 4승만 따냈다. 부상 여파로 특유의 강속구를 잃은 탓에 재기가 불가능해 보였다.

미국 언론은 툭하면 박찬호의 텍사스 입단을 역대 가장 실패한 계약으로 꼽았다. 박찬호는 2005년 시즌 도중 샌디에이고로 이적했으나 이번에는 장출혈로 선수 생명을 위협받기까지 했다.

◆도전은 계속된다=부와 명예를 이룰 만큼 이룬 터라 은퇴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수순이었지만 박찬호는 도전을 멈추지 않았다. 30대 중반의 나이로는 벅찬 불펜 투수를 맡으면서도 2007년부터 매년 팀을 옮겨다녔다. 올해 그의 연봉은 전성기의 10분의 1에도 미치지 못하는 120만 달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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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호는 뉴욕 양키스에 입단한 올 시즌 초 허벅지 통증이 도진 탓에 2승1패에 그쳤고 지난달 초 팀으로부터 방출 대기 통보를 받았다. 이제 정말 한계다 싶었지만 그는 “성장을 위한 시련이 될 것”이라는 말을 남기고 내셔널리그 중부지구 최하위팀인 피츠버그와 계약했다. 그리고 이적 후 17경기 만에 첫 승리를 따내 마침내 새로운 역사의 주인공으로 탄생했다.

김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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