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회사 삼키는 자회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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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128년의 미국 전화 역사를 간직한 AT&T가 자사에서 분리돼 나간 SBC커뮤니케이션스에 팔린다.

SBC는 지난달 31일(현지시간) 160억달러에 AT&T를 인수한다고 발표했다. SBC는 지난해 자회사인 싱귤러를 통해 AT&T의 이동통신 자회사였던 AT&T 와이어리스도 인수했다.

미국 전화시장을 독점했던 AT&T는 1984년 연방법원의 판결에 따라 7개 지역전화 사업체로 쪼개졌다. 이후 장거리 전화사업만 맡게 된 AT&T는 '엄마 벨', 분사된 7개사는 '아기 벨'로 불렸다. '벨'은 전화를 발명한 알렉산더 그레이엄 벨에서 따온 것이다.

에드워드 휘태커 SBC 회장 겸 최고경영자(CEO)는 이날 인수를 발표하면서 "AT&T의 브랜드 가치가 엄청나기 때문에 그 이름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인터넷과 데이터통신, 무선통신 등을 통틀어 버라이존과 1, 2위를 다투는 SBC가 이번 인수를 마무리하면 확실하게 미국 최대 통신업체로 자리잡게 된다. 전문가들은 이번 합병이 독과점 문제로 분할됐던 기업이 다시 합치는 경우이기 때문에 미국정부의 승인을 얻기까지 1년 반 정도가 걸릴 것으로 내다봤다.

SBC의 AT&T 인수는 20년 동안 성장한 아기벨이 엄마벨을 집어삼킨 격이다. 일부에서는 성인이 된 자식이 노쇠한 어머니를 구제했다고 평하기도 한다. AT&T의 쇠락은 급변하는 외부환경에 적응하지 못한 결과로 풀이된다. 아기벨들이 통신업계의 규제완화와 인터넷 혁명 등을 타고 빠르게 사세를 키워가는 동안 AT&T는 종전과 같이 장거리 전화사업에만 매달렸기 때문이다.

뉴욕=심상복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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