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또 수포로 돌아갈 조짐의 투자개방형 병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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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혹시나?’ 했다가 ‘역시나…’ 하게 됐다. 지난 정권으로부터 물려받은 해묵은 숙제인 투자개방형 병원(영리병원) 얘기다. 의료산업을 선진화하기 위해 비의료인이나 영리법인도 병원을 세울 수 있게 물꼬를 터주자는 방안이 이명박 정부에서도 결국 물 건너갈 모양이다. 진수희 보건복지부 장관 후보자가 23일 인사청문회에서 “현행 의료 서비스의 취약점을 개선하지 않고서는 영리병원 도입은 어렵다”고 명백히 반대 입장을 밝혔기 때문이다.

서비스업 경쟁력 강화와 일자리 창출 등 막대한 경제적 효과 때문에 어떻게든 투자개방형 병원을 추진해보려 했던 기획재정부로선 허탈하게 생겼다. 불허 방침을 완강히 고수하던 전임 전재희 복지부 장관만 떠나고 나면 뭔가 실마리가 풀릴 걸로 기대했을 테니 말이다. 그러나 진 장관 후보자는 “우리나라는 의료 사각지대가 많고 건강보험의 보장성이 낮아서 안 된다”며 전 전 장관과 판박이 같은 목소리를 냈다.

하기야 이 정부가 ‘친(親)서민’을 집권 후반기 국정 운영의 최대 화두로 내세운 마당에 야당과 시민단체 등이 대표적 ‘반(反)서민‘ 정책으로 몰아붙이는 투자개방형 병원을 추진하는 게 쉬울 턱이 없다. 하지만 이념 대립에 발목이 잡혀 미래의 무궁무진한 먹을거리를 포기하는 건 결코 서민들에게도 보탬이 되지 않는다. ‘의료산업’을 잘 키워 나라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는 동시에 ‘의료 복지’도 소홀해지지 않도록 방비할 해법을 찾는 것이 오히려 진정한 친서민 아니겠나.

전국 상위 1%의 두뇌들이 모인 우리나라 의료진의 실력은 해외에서도 알아줄 만큼 뛰어나다. 외국 의사들이 자진해서 자기 환자를 치료해 달라고 보내줄 정도다. 여러 제약이 많은데도 불구하고 지난 한 해 6만 명의 외국인 의료 관광객이 방문한 이유다. 규제만 풀린다면 싱가포르·태국·인도 같은 의료 서비스 강국을 능가하지 말란 법도 없다. 그러니 정부도, 국회도, 시민사회도 부디 이념 일변도에서 벗어나 실용적 시각으로 투자개방형 병원 문제를 재고해 보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