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백봉사상 大賞 북제주군 김성민씨] 장애 몸으로 장애인 껴안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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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과거를 떠올릴 때면 그의 눈에는 어김없이 이슬이 맺힌다. 생활이 너무 고달팠기 때문이다. 하지만 몇년 전부터는 더불어 살아갈 이웃이 있다는 사실에 늘 감사하고 기쁘게 생각한다.

제26회 청백봉사상 대상 수상자로 선정된 제주도 북제주군 해양수산과 김성민(金成珉·40·지방수산 6급)씨.

金씨는 제주도에서도 오지로 꼽히는 북제주군 우도에서 3남1녀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어머니가 급환으로 숨지면서 고난의 역정은 시작됐다. 15세, 중학교 2학년 때였다. 아버지마저 집을 떠나면서 그는 졸지에 가장이 됐다. 소아마비(지체장애 4급)로 몸이 불편했지만 톳과 천초를 캐는 마을 공동작업에 끼여 다섯살짜리 막내동생, 초등생인 두동생의 끼니를 해결했다.

고향을 떠나 제주 본섬 고교(성산수고)에 진학했지만 학업보다 '생업'이 우선 해결해야 할 짐이었다.

어렵사리 학업을 마치고 고향 처녀(金香淑·37)와 결혼, 희망을 쌓아가던 시절 '공든 탑'이 무너지는 아픔을 다시 겪어야 했다. 둘째인 딸 아이가 말을 하지도, 알아 듣지도 못하는 정신지체(2급) 장애인으로 판명난 것이었다. 하늘이 원망스럽고 막막하기만 했다.

하지만 매사를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노력하는 金씨에게 기쁨도 간간이 찾아왔다.

1989년 둘째 동생이 대학(한양대 행정학과)에 전액 장학생으로 합격한 것이었다. 외지에서 해녀생활을 하며 생계를 도와오던 바로 밑 여동생(35)과 부둥켜 안고 기쁨의 눈물을 한없이 흘려봤다.

이젠 전남 여수까지 진출해 조업 중인 여동생과 그 친구 해녀들의 근무여건을 개선시켜주고 싶었다. 99년 10월 제주 출신 해녀들이 타향살이를 하고 있는 전국 30여 어촌을 찾아 나섰다. 20여일 동안의 현장조사를 벌인 그는 과도한 수수료로 정당한 보수를 받지 못하는 해녀들의 현실과 개선책을 중앙정부에 전달했다. 다행히 그의 주장이 대부분 받아들여져 해녀들의 권익이 상당 부분 개선됐다.

그는 미용실을 운영하면서 생계를 돕는 부인의 권유로 3년 전부터는 또 다른 보람을 느끼고 있다. 북제주군 조천리에 있는 장애 모자가정과 김녕리의 장애 노부부를 돌보기 시작한 것이다. 이들 가정을 1주일에 두번씩 찾는 金씨 부부는 그들의 아들·며느리·형 노릇을 하고 있다. 몸이 불편한 자신의 딸과 같은 처지의 이웃에 봉사하면서 삶의 보람을 찾고 있는 것이다.

지난해 1월 20평 남짓한 슬레이트 지붕의 작은 집을 마련한 그는 "열심히 살아온 평가를 받은 것 같아 너무 기쁘다"면서 "부상으로 받게 된 상금은 장애인들을 위한 시설에 기부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제주=양성철 기자

ygodot@joongang. co. 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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