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에 배신당한 영화 '친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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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조직폭력배 친구간의 우정을 다룬 영화 '친구'가 결국은 조폭 세계의 검은 돈거래라는 아름답지 못한 모습을 드러냈다.

부산지검 강력부의 27일 수사 발표에 따르면 '친구'를 만든 곽경택(36·郭暻澤)감독은 영화 속 주인공(준석·유오성 분)의 실제 모델인 자신의 친구 鄭모씨와 그가 속한 조폭 상급자인 權모씨로부터 협박을 받고 돈 3억원을 준 혐의를 받고 있다.

영화 '친구'와 부산 칠성파의 관계는 영화 제작초기부터 화제가 됐었다. 논란은 있었지만 '순수한 우정'에 초점을 맞추고, 또 영화라는 창작의 한 소재로 활용한다는 취지였기에 별 무리 없이 받아들여졌다. 개봉 후 폭력성 시비에도 불구하고 8백만명이란 획기적인 관객을 불러모으면서 '한국영화의 가능성을 보여주었다'는 찬사에 묻혀 조폭 문제는 덮여버렸다.

그런데 얼마전부터 영화판에서 은밀히 조폭들의 협박·갈취설이 나돌기 시작했다. 지난 11월 13일엔 검찰의 수사 사실이 본지 보도(11월 13일 31면)를 통해 알려졌다. 그러자 郭감독이 적극 해명에 나섰다. 郭감독은 14일 본지에 전화를 걸어와 억울함을 호소했다. "친구가 어려운 사정이라 영화사로부터 보너스를 받아 일부를 그에게 주었다"는 설명이었다. 영화속에서 그려진 친구간의 우정처럼 아름다운 설명이었다.

그러나 이같은 설명은 이번 검찰의 수사 결과와 맞지 않는다. 검찰은 돈의 성격에 대해 "흥행성공에 따른 보너스는 아니다"고 분명히 밝혔다. 다시 郭감독에게 급하게 전화연락을 했다. 그는 "저쪽(조폭) 사람들은 살아가는 모습이 다르다. 법에 따른 해석은 검찰의 몫"이라며 말하길 꺼렸다. '협박인지, 아니면 진짜 보너스인지'를 계속 물었다. 郭감독이 어렵사리 꺼낸 말은 "진짜 힘들다. 오랜 시간이 흐른 뒤, 언젠가 내 말이 아무런 부담감 없이 나올 수 있을 때 다시 얘기하겠다"는 것이었다.

그의 말처럼 조폭들과 검찰, 그리고 영화인의 삶은 다를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나 현실에선 무엇보다 법이 앞서야 할 것이며, 아무리 아름다워도 조폭과의 우정은 법이란 엄격한 척도에서 다뤄져야할 것이다.

오병상 기자 obsa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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