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1초도 길다" 총알 탄 승부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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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1초 차이로 순위가 뒤바뀌는 자동차 경주에서 레이서에게 1초는 무한(無限)시간이다. 그런 '1초'들이 쌓이고 쌓여, 영국은 이제 자동차 경주 1백년의 역사를 자랑한다.

세계 5대 자동차 생산국인 한국에서 자동차 경주는 아직 많은 사람의 관심을 끌지 못한다. 오프로드 경주가 도입된 지 10년, 온로드 경주가 들어온 지 겨우 5년이다.

이런 가운데 국내 온로드 자동차 경주 대회의 대표격인 '한국 모터 챔피언십'(www.kmrc.co.kr)이 지난 10일 막을 내렸다.

이 대회 GT1 부문에서 챔피언 타이틀을 거머쥔 프로 레이서 김의수(30·성우오토모티브㈜ 인디고 레이싱팀 소속)씨를 경기도 용인 스피드웨이에서 만났다.

GT1은 일반승용차를 경주용으로 쓰는 투어링 분야의 꽃이다. 차량 개조를 가장 많이 허용하기 때문에 투어링 부문 중 스피드가 가장 빠르다.

"경주를 하는 동안에는 극도로 집중을 해야 해요. 적정 시점에서 0.2초만 늦게 브레이크를 밟아도 큰 사고가 나니까요."

레이서들은 일반인이 실감하지 못하는 '찰나' 속에서 산다. 0.001초 단위의 시간 사이를 가로지르며 무아지경(無我之境)을 체험한다.

챔피언십 대회는 GT1 외에 여러 부문의 투어링 차가 동시에 트랙을 달리는 통합전 형태로 치러진다.

30대 정도의 차가 함께 트랙(2.125㎞)에 올라 동시에 출발한다. 트랙을 30바퀴 달려 부문별로 가장 먼저 들어온 선수가 1위가 된다.

용인 스피드웨이의 경우 가장 긴 직선 구간의 길이가 4백50m다. 짧은 트랙 위에서 순간 속도가 2백㎞를 넘어설 때 레이서들은 어떤 상태일까.

"레이싱 입문 초기에는 내가 지금 몇등인지, 몇 바퀴째 돌고 있는지도 몰랐어요. 도대체 어떤 차가 나와 같은 부문인지, 즉 내 경쟁자인지를 분간하지 못했으니까요. 그 정도로 정신이 없어요.하지만 이제는 바로 옆에서 달리는 선수가 힘들어하는지 어떤지를 표정에서 읽을 수 있어요. 사고가 났을 때 관중석에서 열광하는 사람들의 얼굴도 눈에 들어오고요."

공중 곡예 서커스를 보면서 관중들은 내심 곡예사가 그네를 놓치는 모습을 보고 싶어한다고 했던가. 사고에 열광하는 관객들의 '못된' 심리에 대해 그는 아주 태연하다.

"경기 중 차들이 서로 들이받고, 부딪치는 게 다반사죠. 관중이 그걸 즐기고 환호하는 건 당연해요. 일상에서 볼 수 없는 모습이니까요. 안전이요? 경주용 차는 일반 차보다 세배 정도 더 안전하다고 보시면 돼요. 차 내부에 특수강 파이프를 여러겹으로 덧대 운전자를 보호하고 사고시에도 차의 형태를 유지하지요."

김씨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곧바로 레이서의 생활을 시작했다. 이제 경력 10년째다. 그중 절반 이상은 일정한 수입이 없어 생활고를 겪어야 했다. 그저 차가 좋아 레이스에 매달리던 시절이었다.

경기 중 트랙을 벗어나 차체가 여섯 바퀴를 뒹구는 경험도 했다. '사고를 몇번이나 당했느냐'는 질문에 그는 "기억을 할 수 없을 만큼 많다"고 했다.

아버지는 레이서 생활에 매달리는 그를 마뜩찮아 했다. 안전 문제 때문이었다. 1998년 세상을 떠나 아들이 챔피언이 되는 순간을 지켜보시지 못한 아버지께 그는 죄송할 따름이다.

GT1 부문은 레이서 못지 않게 차의 성능이 중요하다. 김선수가 경주용으로 모는 현대 투스카니에는 개조비만 4억이 들어갔다. 같은 회사 소속의 정비사 두명이 늘 그와 함께 다닌다.

그는 현재 상당한 팬도 확보하고 있다. 그의 개인 홈페이지 겸 팬클럽 홈페이지(www.kimsraci

ng.com)에 가입한 회원이 3백명을 넘는다. 매번 그의 경기를 빼놓지 않고 보러 오는 열성 회원도 30명 정도 된다.

"그냥 관전하기보다는 응원할 선수를 한명 꼭 미리 고르세요. 자동차 경주의 룰도 미리 알아두시면 좋고요. 경쟁이 치열한 급커브 구간이 가장 관심있게 지켜봐야할 코스죠."

한편 오는 22일에는 경남 창원에서 '제4회 국제 F3 자동차 경주 대회'(www.f3korea.net)가 시작된다.

용인=글·사진 성시윤 기자

copipi@joongang.co.kr

온로드 경주의 종류는

포장도로에서 펼쳐지는 온로드 경주는 크게 투어링카 경기와 포뮬러카 경기로 나뉜다.

투어링카는 연간 2천5백대 이상 시판된 승용차를 개조한 것이다. 배기량 및 개조 정도에 따라 GT1·GT2·투어링 A(이상 1천6백∼2천㏄)·투어링 B(1천5백∼1천6백㏄)·원메이커(1천3백∼1천5백㏄) 등으로 구분한다. 반면 포뮬러카는 원래부터 경주용으로 보통 차체 앞부분이 뾰족하고, 바퀴가 차체 높이만큼 외부로 돌출돼 있다. 배기량과 마력에 따라 F1 ·F3000(이상 3천㏄)·F3(2천㏄)·F1800(1천8백㏄)·F1600(1천6백㏄) 등으로 나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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