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유 중단에 극한 반응 나올까 우려 북한 달래기 '당근'도 제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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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15일 발표된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대북성명은 시기와 형식에서 북한을 달래고 한반도 긴장고조를 경계하려는 미국의 의지를 담고 있다.

성명은 14일 미국의 주도로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가 대북 중유 공급을 중단한 직후에 나왔다. 중유 지원 중단은 1994년 미국과 북한이 제네바 합의로 관계의 기본틀을 형성한 뒤 미국이 취한 최초의 대북 제재다. 그동안 북한을 '악의 축'으로 규정하고, 핵 선제공격 가능성을 시사하는 등 여러가지 외교적 공격이 있었지만 미국이 북한에 대해 실질적이고 물질적인 제재를 가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미국은 북한이 중유 지원 중단을 초강경조치로 해석해 이에 상응하는 벼랑끝 대결정책을 취할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 이번 성명은 북한의 이같은 오해를 막기 위해 중유 중단의 불가피성을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워싱턴의 고위 외교소식통은 "KEDO 결정 직후 미국은 성명 발표를 한국 측과 협의했으며 성명의 가장 중요한 대목은 대북 침공 의사가 없다는 점"이라며 "성명은 한마디로 북한을 달래기 위한 것"이라고 풀이했다.

그는 "북한이 중유 중단을 제네바 합의의 완전 파기로 받아들여 합의에 따라 봉쇄된 폐연료봉을 다시 꺼내 플루토늄을 추출하는 상황이 벌어질까봐 미국은 우려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미국의 대북 설명이 대통령 성명이라는 형식으로 나온 것도 의미가 있다. 부시 대통령의 대북 성명은 이번이 세번째다. 2001년 6월 성명은 대북 대화 재개를 천명했고, 지난 9월 성명은 특사 파견을 제안했다. 두번의 성명이 모두 대화 추구에 관한 것이었다면 이번 성명은 대화와 중유 지원 중단의 이유가 북한의 핵 개발에 있다는 점을 분명히 하고 있다.

백악관이 이처럼 신속하게 대통령 성명을 발표한 것은 대 이라크 전쟁이 코앞에 닥친 상황에서 긴박한 제2의 안보 현안을 만들지 못하도록 북한을 묶어두려는 전략적 고려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북한이 일을 저지르면 북한을 제쳐두고 유독 이라크만 공격하는 명분이 약해질 뿐더러 미 국민과 세계의 관심을 이라크에 집중시키기 어렵기 때문이다.

부시 대통령은 성명에서 북한을 침공할 의사가 없다는 점을 특히 강조했다. '북한 불(不)침공'은 지난 2월 방한 때 이미 천명된 것이어서 새로운 것은 아니다. 하지만 최근 북한이 핵 폐기 전제조건 중 하나로 불가침조약 체결을 들고 나온 상황이어서 부시 대통령이 이를 재확인한 것은 북한 요구에 원칙적으로 부응하는 의미가 있다.

워싱턴=김진 특파원

jin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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