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신권 돈 초단기 상품으로 몰려 자금시장 불안 부채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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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7면

투자자들이 마땅한 투자처를 찾지 못해 시중자금의 단기 부동화 현상이 심화되고 있는 가운데 투신사를 찾는 고객들도 초단기 상품을 선호하고 있다.

펀드 평가사인 제로인(www. fund

doctor. co. kr)에 따르면 지난 11일 현재 전체 채권형 펀드 중 만기 1년 미만인 단기 채권형 펀드의 비중이 67%를 차지했다.

이 중 만기 3개월짜리인 초단기형 펀드의 비중이 49%인데 비해 만기 6개월 펀드는 17.6%에 불과했다. 지난해 3월만 해도 단기 채권형 펀드의 비중이 이처럼 높지는 않았다. 지난해 3월 초 단기 채권형 펀드의 비중은 37%에 불과했다.

1년8개월 만에 장·단기 펀드의 비중이 완전히 역전된 것이다. 특히 지난 4월 중순 이후 주가 급락과 때를 맞춰 단기 채권형 펀드의 비중이 높아졌다(그래프 참조). 이는 주식시장에서 빠져나온 자금이 단기 채권형 펀드로 몰렸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증시 전문가들은 이처럼 단기 채권의 비중이 높아진 것은 주식시장 침체와 저금리에 따른 것으로 보고 있다. 장기와 단기 금리 차이가 크지 않은 것도 장기 채권의 투자매력을 떨어뜨리고 있다.

13일 현재 국고채 3년물의 금리가 연5.19%인 데 비해 3개월물 양도성예금증서(CD)와 기업어음(CP) 금리는 각각 4.91%와 4.99%를 기록했다. 3년물 국고채와 3개월짜리 CD·CP의 금리 차이가 불과 0.20∼0.28%포인트밖에 나지 않는 것이다. 굳이 3년물을 편입할 필요가 없는 셈이다. 미국만 해도 연방기금 금리(단기 금리)와 국채 10년물의 금리 차이는 2.5%포인트 가량 된다.

채권 수익률이 더 크게 떨어질 것 같지 않다는 전망도 장기 투자를 가로막는 요인이다. 수익률이 떨어져야 채권 가격이 오르면서 펀드의 수익률도 좋아진다.

반면 채권 수익률(금리)이 오르게 되면 펀드 수익률은 나빠진다. 최근 금리가 떨어졌는데도 채권형 펀드의 수익률이 낮은 것은 금리 인상을 예상한 투신사들이 금리 선물을 매도했기 때문이다.

즉 금리가 인상되면 매도한 금리선물에서 이익이 발생해 채권가격 손실을 보전할 수 있는 점을 노린 것이다. 그러나 오히려 금리가 떨어지는 바람에 금리선물 매도에서 손실이 발생했다.

마이다스에셋 조재민 사장은 "금리가 더 오를 것 같지도 않지만, 더 크게 떨어질 것 같지도 않은 만큼 투자자들이 단기물 위주로 투자하면서 관망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처럼 투신사 자금이 초단기화하면서 자금시장도 불안정해지고 있다. 유입되는 자금의 성격상 단기로 운영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금융기관은 장기 계획에 따라 자금을 운영하지 못하며, 기업들에 장기 대여도 할 수 없다. 주로 금융기관간 초단기 대여(콜 자금)로 활용하고 있을 뿐이다.

KTB자산운용 장인환 사장은 "장기 자금이 많이 유입돼야 기업들에 자금이 흘러들어갈 수 있다"며 "그러나 단기 자금이 대부분인 상태에서는 금융기관간 돈놀이로 활용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이희성 기자

budd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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